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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낙성 검거의 재구성…탈주부터 검거까지

등록 2006-10-31 18:35수정 2006-11-01 00:24

‘청송감호소 탈주범’ 이낙성(42)씨가 1년7개월만인 31일 오후 검거돼 서울 성동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청송감호소 탈주범’ 이낙성(42)씨가 1년7개월만인 31일 오후 검거돼 서울 성동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치과 치료중 “경찰 불러달라”…그동안 중국집 전전
이씨가 숨은 곳은 중국음식점

이낙성(42)씨는 2004년 1월부터 청송감호소에서 보호감호를 받다 지난해 4월7일 안동 ㅅ병원에서 달아났다. 치핵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했던 그는 감시하던 교도관이 졸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환자복 위에 교도관의 점퍼를 걸쳐입고 줄달음쳤다. 이씨는 곧바로 택시를 타고 서울로 와 북창동에 있는 인력시장을 찾았다.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설거지를 석달가량 하며 12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 이후에도 이씨는 서울 마포·강남, 경기도 부천 등지의 중국음식점을 떠돌며 주방에서 설거지를 주로 하고 때에 따라 면을 뽑는 일도 거들었다고 한다. 잠자리는 주로 식당에 딸린 방에 마련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은 그가 석달 이상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불안한 마음을 주로 술로 달랬다. 200만원 가까운 돈을 월급으로 받으면 일하지 않고 한두 달 이상씩 술로 불안감을 달래는 날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씨가 지난 여름 두 달동안 일했던 서울 성동구 성수동 ㄷ중국음식점의 사장 전아무개(49)씨와 종업원들은 이씨가 술집을 자주 찾아다녔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그는 붙잡힌 뒤 경찰 조사에서 “도피생활을 하면서 많이 지쳤다”고 말했다. 불안을 술로 달래다보니 수배전단지의 얼굴과 달리 이씨는 한층 마르고 얼굴빛도 검게 변해 있었다.

검거의 재구성


이씨는 경찰에 붙잡히기 하루전인 10월30일 새벽 북창동 근처의 한 공원에서 깨어났다. 전날 누구와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왜 자신이 ‘노숙’을 했는지를 기억할 수 없었다. 지난 19개월동안 늘 해오던 대로 그는 가까운 인력시장을 찾아 ‘몸을 팔았다’. 창신동에 있는 한 중국음식점에서 아침 9시부터 밤 10시30분까지 일하고 돈 9만원을 손에 쥐었다. 곧바로 신촌으로 향해 포창마차에서 내리 소주 5~6병을 마셨다. 정신을 못 가누던 그는 택시를 타고 성수동으로 와서는 곯아떨어졌다. 한참이 지나 깨어보니 길거리였다. 어느 여관 계단에서 넘어졌는지 앞니가 깨지고 턱이 찢어져 있었다. 술이 깰수록 상처는 부풀어올랐다. 참다못해 가까운 ㅇ병원을 찾았다. 원무과 직원 박현(32)씨에게 ‘정종철(또는 장영철)’이라는 무협소설 속 이름을 댔으나 통하지 않았다. 그순간 그는 1년7개월 동안 숨겨온 진실을 말해버린다.

“감호소를 나온 이낙성이다. 경찰이 잘 알고 있다. 응급치료라도 하자.”

턱에 붕대를 감고 반창고를 붙이고 병원 문을 나섰으나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다. 경찰과 순찰차가 이내 몰려왔다. 10여분 가량 근처를 천천히 걷는데 한 경찰관이 달려와 팔짱을 대뜸 꼈다. 길거리에서 구두수선을 하는 이창식(49)씨가 이씨를 알아보고 병원 안팎을 수색 중이던 경찰관을 부른 것이다.

“이낙성씨?”, 경찰의 물음에 이씨는 순순히 “네”라고 대답했다. 31일 낮 3시10분. 이렇게 1년7개월에 걸친 ‘도망자’ 생활은 끝났다.

자수 아닌 자수

경찰에 자신을 알리라고 말한 그는 정말 자수한 걸까. 이씨는 자신에게 현상금 1천만원이 걸린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병원 직원에게 자신이 청송감호소에서 나왔고 이낙성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아무리 치료가 급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신원을 밝힐 정도는 아니었다.

병원 직원에 사실을 털어놓고 응급 처치를 받은 뒤 그는 무작정 병원 문을 나섰지만 100m도 가지 못한 채 10여분 뒤 수갑을 찼다. 신고를 받은 경찰관이 자신을 잡기 위해 들이닥치리라는 점을 몰랐을 리 없다. 도망칠 의사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수를 하려는 게 아니었냐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하지만 경찰은 자수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서울 성동경찰서 송용욱 형사과장은 “이씨가 마음 속으로는 자수를 하려 했을 수도 있지만 현장(병원)을 떠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현행법상 자수로 인정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탈주 피의자 이낙성
탈주 피의자 이낙성

사람들이 못 알아본 까닭은?

이씨를 붙잡고 난 뒤 경찰관들은 이구동성으로 수배전단지 속 사진과 이씨의 실제 모습이 크게 달랐다고 말했다. 살집이 줄고 노숙을 자주 해 얼굴이 검어지고 거칠어진 탓이다. 송용욱 형사과장은 “도저히 사진만으로는 이씨가 진짜 이낙성인지 분별하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실제 경찰은 이씨의 신원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검거 직후 열 손가락의 지문을 기록과 일일이 대조하기까지 했다.

이씨가 지난 6월부터 2달 가량 머물렀던 ㄷ중국음식점 주방장 김아무개씨는 “자기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하는 일도 없이 조용해 평범한 사람이라는 느낌밖에 없었다”며 “수배된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털어놨다. 가까이에서 그와 지냈던 이들조차 이씨가 ‘도망자 이낙성’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를 수배자로 알아보지 못했다 해도 그의 불안감은 늘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틈만 나면 술을 마셨고 돈이 떨어지면 술값을 벌기 위해 다시 조용히 설거지를 했다.

1천만원 현상금은 누구에게?

이낙성씨 검거 과정에서 시민 2명은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ㅇ병원 원무과 직원 박현씨는 이씨의 말을 듣고 침착하게 경찰에 신고해 초기에 병원 주변 이씨의 예상도주로를 차단하도록 도왔다. 또 구두수선을 하는 이창식씨는 출동한 경찰관이 이씨 행방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근처를 지나던 이씨를 정확히 지목해 알려줬다. 이 두 사람은 앞으로 얼마의 현상금을 받게 될까? 서울경찰청은 앞으로 두 사람이 이씨의 검거에 기여한 정도를 심사해 1천만원 범위 안에서 나눠줄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31일 저녁 8시30분께 수배관서인 경북 안동경찰서 수사팀에 넘겨졌다. 이씨는 지난해 4월 달아나면서 교도관의 점퍼를 훔쳐 입었기 때문에 형법상 도주죄와 절도죄로 또다시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씨는 이날 신병이 인도되기 직전 심경과 추가범행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괴롭습니다. (추가 범행은) 안 했습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이씨의 목소리는 너무도 작아 바로 곁에 서 있던 기자에게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전진식 김기태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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