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정혜신 (43·정혜신 심리분석연구소 대표). 김순배 기자
정신과 의사 정씨 대검 강연“검사, 인간으로서 충분하지만 신으로서는 부족한 사람”
“검사, 인간으로서 충분하지만 신으로서는 부족한 사람”
정신과 의사 정혜신(43·정혜신 심리분석연구소 대표)씨가 이번엔 검사들의 직업적 특성에 ‘정신분석학 메스’를 갖다댔다. 정씨는 2일 대검찰청에서 ‘정신분석적 접근을 통한 검사론’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검사들이 직업적 역할을 스스로와 지나치게 동일시할 때 심리적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정씨가 축구선수 마라도나에 대한 비유를 빌려 검사를 표현했을 때, 그는 검사들의 지적 능력이나 권능을 찬양한 것이 아니었다. 정씨는 되려 검사는 자신이 가진 권력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자연인이 감당하기에 버거운 직업이라고 분석했다.
정씨는 이날 강연에서 ‘페르조나(Persona)’란 심리학 용어를 빌려 검사라는 직업의 심리적 특성을 분석했다. 페르조나란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사용하던 가면에서 유래한 말로, 한 사람이 사회적인 역할에 따라 달리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정씨는 “검사는 직업적인 페르조나가 강하다. 페르조나가 강할 경우 맡은 역할을 이행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스스로는 그 역할에 과다하게 동일시하면 다른 역할을 수행해야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정씨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런 막중한 사회적 역할과 권한 때문에 검사들은 지나치게 개인의 인격을 직업적 페르소나와 일치시켜 ‘정신적 건강’을 해치게 된다. 집에가면 남편, 회사에서는 상사·부하 등 여러 가지 페르조나를 상황에 맞게 융통성있게 쓰고 벗어야 건강한 사람인데 검사들은 이에 서툴다는 것. 정씨는 자신과 상담했던 한 검사의 부인을 사례로 들었다.
검사 남편과 언쟁이 잦았던 그 부인은 남편과 대화하는 것을 벽에 대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하루는 부인이 속 상해 울고있는데 검사 남편이 울고있는 부인에게 ‘우는 이유 세가지를 대라.우는 이유를 이해해야 뭐든 해줄 게 아니냐’고 말했다던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씨는 “검사동일체 원칙이 검찰청법에 명문으로 있었는데, 이처럼 상사의 업무 지시를 어기면 실정법 위반이라고 명문에 밝히는 직업은 검사밖에 없을 것”이라며 “10년에 걸쳐 에프-16 전투기 조종사를 키우는데 87억원이라는 거액이 들기때문에 조종사들은 ‘네 몸은 네 몸이 아니다’란 말을 듣는다. 검사동일체의 원칙도 이와 유사하다”고 해석했다.
정씨는 검사들이 스스로를 과다하게 페르조나에 동일시하면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정씨는 사형집행을 지켜봤던 미국 기자들을 예로 들었다. 90년대에 미국의 한 정신과 의사가 사형집행 현장을 참관한 기자 18명을 지속적으로 관찰한 결과, 그 기자들에게 심각한 ‘해리성 장애’가 나타났음을 발견했다. 해리성 장애란 일종의 심리적 ‘방어 메커니즘’으로 사실은 기억하지만 사실과 관련된 감정을 의식밖으로 밀어내거나 감정을 마비시키는 것을 일컫는다. 잔인한 사형집행 장면을 지켜본 기자들은 자기 자신과 마음을 분리시켜 감정을 마비시킴으로써 자신을 유지시키고자 한 것이다.
문제는 일상에서까지 그 감정의 마비가 번져나가 친구와 가족들에게도 무감각·무감정해지는 경향이 생겼다는 데 있다. 정씨는 “검사는 사형집행을 참관할 의무가 있고 잔혹한 사건도 수사해야하는 등 업무상 특성때문에 해리성 장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정씨는 “유능한 검사일수록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청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적인 인간관계를 차단시키기 때문에 더욱 심리적 문제에 부닥칠 수 있다”며 “그런데도 검사들은 ‘나는 검사다’란 높은 자긍심이나 폭탄주만으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검사라는 직업의 사회적 중요성과 스트레스 등을 고려할 때 검찰차원에서 검사에 대한 물리적·심리적 지원대책을 마련해야한다”며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대검 15층 소회의실을 가득메운 100여명의 검사들은 크게 동감한 듯 1시간 30분동안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대검 혁신추진단 김영대 검사는 “많은 검사들이 지적에 수긍했다. 특히 감정의 마비현상(해리성 장애)을 설명한 대목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 밝혔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문제는 일상에서까지 그 감정의 마비가 번져나가 친구와 가족들에게도 무감각·무감정해지는 경향이 생겼다는 데 있다. 정씨는 “검사는 사형집행을 참관할 의무가 있고 잔혹한 사건도 수사해야하는 등 업무상 특성때문에 해리성 장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정씨는 “유능한 검사일수록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청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적인 인간관계를 차단시키기 때문에 더욱 심리적 문제에 부닥칠 수 있다”며 “그런데도 검사들은 ‘나는 검사다’란 높은 자긍심이나 폭탄주만으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검사라는 직업의 사회적 중요성과 스트레스 등을 고려할 때 검찰차원에서 검사에 대한 물리적·심리적 지원대책을 마련해야한다”며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대검 15층 소회의실을 가득메운 100여명의 검사들은 크게 동감한 듯 1시간 30분동안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대검 혁신추진단 김영대 검사는 “많은 검사들이 지적에 수긍했다. 특히 감정의 마비현상(해리성 장애)을 설명한 대목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 밝혔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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