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금강산 관광길에 북한 안내원과 나란히 선 이철우씨.
12번째 금강산 찾은 이철우씨
가족 잃은 슬픔 넘어 통일 꿈꿔
남북소통 위해 120번 채울 것
가족 잃은 슬픔 넘어 통일 꿈꿔
남북소통 위해 120번 채울 것
15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는 눈을 기증했다. 그리웠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8년 전 22살 때 사고로 숨진 큰아들은 쉽게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자식 넷 가운데 가장 똑똑했고, 가장 애정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천주교 신자인 그는 사랑과 평화로 고통의 숲을 헤쳐나가기 시작했고, 어느덧 개인적 고민은 그를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에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충북 청주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며 자영업을 하고 있는 이철우(58)씨는 지난해 12월8일 처음 금강산을 찾은 뒤 매달 한차례씩 금강산을 방문했다. 올해 11월 초까지, 횟수로만 벌써 열두번이나 된다. 이씨는 “앞으로 9년 동안 매달 금강산을 찾아가 120차례를 채울 생각”이라고 밝혔다. 처음 금강산을 찾을 무렵, 그는 지쳐 있었다. 개인적인 삶도, 세상 돌아가는 것도 답답했다. 종교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내가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좌표를 찾고 싶었다고 한다. 27년 전 리비아에서 중동 근로자로 근무해 본 경험 이외에는 해외에 다녀온 적이 없어 해외 여행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젊은 시절 가톨릭 농민회 등에서 활동했던 그는 기왕이면 한반도의 우리 땅을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평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분단을 해결하지 못하면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통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니라, 삼시 세끼 먹는 밥처럼 꼭 해야 되는 일이지요.” 한번 금강산을 갔다 온 뒤, 이씨는 금강산 사랑에 푹 빠졌다. 자연환경이 너무 깨끗했고, 사는 것은 뒤떨어져 있지만 안내원들과 얘기하는 게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사람도, 언어도 똑같았다. 겨울에는 산이 잘 보이고, 눈이 오면 장엄하고, 잎이 우거지면 포근했다. 북한의 핵실험 뒤 그는 매달 둘째주 토·일요일을 ‘금강산의 날’로 정했다. “하늘의 진리는 고통 속에서도 그 고통을 뚫고 올라오는 것입니다. 세상 흐름에 편하게 따라가는 것은 의미가 없지요. 남북이 계속 소통을 해야하고, 금강산은 일단 문이 열려 있으니까 나만이라도 계속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 죽기 전에 큰일을 할 수는 없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조금이라도 밑거름이 되는 일을 했으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은 늘 한다”면서도 “물론 그런 걸 따지면서 금강산을 가는 것은 아니다”라며 헐헐 웃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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