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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회공헌 잘하면 경영도 소리없이 잘하더라”

등록 2006-11-29 17:42수정 2006-11-29 17:48

기업 사회공헌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쓴소리 단소리

“과거엔 기업들이 ‘돈 벌어 세금내고, 고용 많이 하면 그게 애국 아니냐’고 했어요. 그건 19세기, 20세기 때의 생각입니다. 돈 벌었으니 자선한다는 게 아니라, 기업이 시민과 함께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마음가짐이 곧 기업 사회공헌의 본질이죠.”

박원순(50)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최근 급증하는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평가에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 “여전히 갈길은 멀지만, 사회공헌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다만 그는 기업들이 관행을 깨지 못하는 걸 아쉬워했다. “홍보에만 집착하는 기업, 외부 요청에 따라 주먹구구식 기부만 하는 기업, 거액을 내놓고도 효율적인 운영을 못하는 기업이 아직도 많아요.”

박 상임이사는 “기업들이 사회공헌 분야에도 상상력을 발휘하면, 한국사회는 더 많이 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 사회공헌의 형식과 내용, 분야 등도 기업의 상품처럼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한겨레>는 지난 2000년 아름다운재단을 만들어 본격적인 나눔 문화를 전파했던 박 상임이사를 만나, 최근의 기업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그의 평가와 전망 등을 들어봤다.

“언론에 나오나” 안절부절하면 곤란, 홍보업무와 분리해 전문성 키워야…


■ 최근 2~3년 사이에 기업들의 사회공헌이 크게 늘고 있다. 이런 활동들을 과거와 비교해 평가한다면
= 기업들이 사회공헌에 주목한 지 얼마되지 않았다. 일부 선진적인 기업 몇 곳을 빼면 논의 자체가 없었는데, 몇 년 사이 ‘기업시민’ 의식이 높아진 것만은 분명하다. 과거엔 기업들이 소비자들에 의한 성장보다는 정치권과 이권거래를 통한 성장에 많이 의존했지만, 지금은 이런 정경유착의 고리가 많이 끊어졌다. 정치자금으로 쓸 데없는 돈을 쓰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쓸 수 있는 비용이 많아진 측면도 있다. 기업 스스로도 소비자에게 이미지가 좋아져야 기업이 잘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한 점은 큰 진전이다.

■ 현재 한국 기업의 사회공헌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 선진국에 비해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기업환경이 글로벌해지고 선진 외국 기업의 사례를 많이 소개받아 연구하면서 우리 기업의 사회공헌 수준도 짧은 시간에 질적, 양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물질적인 기부 뿐 아니라 사회공헌 활동을 바라보는 회사의 경영자나 임직원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예전엔 단순히 금전을 기부 하는 형태의 일률적 기부가 주된 관행이었다면, 지금은 비영리기구(NPO)와 협력을 많이 한다. 전문적인 집단과의 협업을 통해 보다 효율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추구하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시스템적인 걸림돌도 있다. 이를테면, 기업의 기부활동에 대한 자세한 통계를 얻기 힘들다. 국세청에 해당 자료를 요구해도 주지 않는다. 미국은 국세청에서 기업 기부에 대한 상세한 통계를 발표한다. 통계가 제대로 나와야 정책도 만들고, 캠페인도 할 수 있는데, 이게 안되는 상황이다. 기업의 사회공헌을 바라보는 관료들의 인식이 아직 낮다.

■ 그동안 많은 기업인들을 만났는데, 인상 깊거나 바람직한 모델이 있나
= 최근에 기업 차원이 아닌 경영자 개인의 기부가 늘고 있다. 회삿돈 기부는 주주의 이해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경영자 개인의 기부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상당히 소중한 흐름이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경우 회사 안에 공익재단이 있는데도, 비영리단체에 기부해 사내 재단과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대표 역시 그런 활동을 한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은 단연 돋보이는데, 세세하게 열거하기 곤란하지만 어떨 때는 이 분이 사업가가 아니라 시민운동가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또 실명을 밝히긴 곤란하지만, 국내 최고경영자들 가운데 사회공헌 활동을 소리없이 하는 사람도 무척 많다. 내 경험으론 기부를 잘하는 기업가들이 사업도 잘한다. 예를 들어, 아모레퍼시픽이 저소득층 여성가장들을 위해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한 주식이 처음엔 50억원쯤 됐는데, 주가가 계속 올라 지금은 130억원이나 된다.

‘낙하산 재단’보다는 민간위탁 효과, 상상력 발휘하면 ‘공헌상품’도 진화

■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 사회공헌 활동을 하면서 당장의 홍보 효과를 바라는 곳이 아직 많다. 같이 사업하면서 ‘이게 언론에 나갈지’를 안절부절 하는 기업들을 대하면 참 곤란해진다.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홍보실 산하에 사회공헌팀을 두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긴 안목을 가져야 한다. 홍보업무와 분리해 꾸준히 하면 5년, 10년 뒤에는 성과가 나온다. 또 하나, 지금은 대기업들이 이곳저곳에서 들어오는 요청에 산발적으로 응하다보니 전문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예컨데 금호아시아나의 문화예술 지원활동처럼 분야를 전문화 할 필요가 있다. 박삼구 회장처럼 문화예술인과 활발한 교류도 갖고, 어려운 예술인들에게 비싼 악기도 사주고, 공연장도 만들면 전문성도 생기고 성과도 남다르다.

■ 기업들이 아직 개척하지 못한 사회공헌의 ‘블루오션’이 있나?
= 상상력을 발휘하면 활동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얼마전 방한한 그라민 은행의 유누스 총재를 만나서 들은 이야긴데, ‘대농’이란 프랑스의 낙농회사가 그라민 은행과 합작해 방글라데시에 유제품 회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운영은 노하우가 있는 ‘대농’이 하지만, 수익금은 모두 방글라데시에 기부한다. 단순한 기부보다 한발 앞서가는 패턴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엘지전자가 합작투자해 오래된 컴퓨터 부속물을 재활용·폐기하는 회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것도 사회공헌의 새로운 형태로 본다. 내가 일하는 희망제작소에서 최근 어디 한 곳에 자전거 공방을 하나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자전거 인구도 늘고 자전거학회까지 생기는 마당에 국내엔 제대로 된 자전거 회사가 없다. 삼천리자전거도 중국에 가 있다. 재미난 자전거를 만드는 공방을 만들어 고용도 창출하고 이익도 환원하는 단순 자전거 공장이 아닌 공방의 개념을 재미난 자전거를 만들자는 취지다.

■ 최근 기업들이 앞다퉈 사회공헌 재단 등을 만들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문제점은 없나?
= 기업들이 재단 만들어 전문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의미가 있고 고민해볼 만한 방안이다. 재단은 여러 형태가 있는데, 단순히 기금을 배분하는 역할만 하는 곳도 있고, 자체적으로 사업을 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재단이 관료화되고, 퇴직 직원들의 낙하산 자리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얼마전 모 그룹에서 거액을 내놓고 장학재단 만들었는데, 거기 책임을 맏은 분이 내게 하소연을 하더라.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해보니 주무 관청의 퇴직 관료들을 자리에 앉혀놓고 연봉도 1억 얼마 주고 있어서 지금까지 이런 사람들 내보내고 줄이느라 힘들었다고 하더라. 기업이 운영하는 재단은 결국 이런 구조 속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잘하는 민간단체들에게 이런 일을 맡기는 것이 효과적이다. 풀무원 남승우 사장의 경우에는 개인자산 백억원 이상을 투자해 북한 청년들 해외 연수시키는 사회공헌 프로그램 만들었는데, 아름다운 재단에 위탁해 운영 중이다. 남 사장 말이 “회사에서 이 사업을 운영하려면 직원도 고용하고 훈련도 시켜야 하는데, 아름다운재단에 몇 천만원 내고 운영을 맡기는 것이 경제적이지 않냐”는 것이다. 재단 위탁 경영 방식도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식이라고 본다.

석진환 이정국 기자 soulfat@hani.co.kr 사진 이정용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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