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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사람] 고운 신부 손 잡고 새로 태어났죠

등록 2006-12-15 18:04

전통 혼례복을 입은 문상철(가명)씨 부부(앞줄)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전통혼례장에서 열린 ‘2006 새생활 합동결혼식’에서 축하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한국갱생보호공단 제공
전통 혼례복을 입은 문상철(가명)씨 부부(앞줄)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전통혼례장에서 열린 ‘2006 새생활 합동결혼식’에서 축하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한국갱생보호공단 제공
‘전과자’ 문상철씨의 특별한 결혼식

문상철(45·가명)씨에게 지난 14일은 다시 태어나는 날이었다. 마음씨 착한 신부 이은희(45·가명)씨와 결혼식을 올렸기 때문이다. 웨딩 마치와 함께 그는 자신의 삶에서 ‘살인 전과’를 온전히 털어버렸다.

문씨는 10여년 전 동거하던 여성과 사소한 일로 다투다 순간적으로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이 일로 13년4개월을 ‘또다른 사회’에서 살아야 했다. 첫 결혼에서 낳은 4살·5살배기 아들·딸은 어릴 적의 그처럼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피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법정에서 제대로 변호를 받지도 못했다. 같은 죄를 지은 교도소 동료들이 10년도 안 돼 출소하는 것을 볼 때면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이런 마음의 앙금이 가라앉자 떠오른 것은 불우했던 지난 시절이었다. 그는 7살 때 고아원에 보내졌다. 어부였던 아버지가 풍랑으로 실종되고 술집을 운영하던 어머니는 자식들을 돌보지 못했다. 고아원에서 문씨는 옥수수죽과 시커먼 보리밥으로 끼니를 겨우 이으면서 폭력과 중노동에 시달렸다. 한겨울 새벽에도 ‘선배’들은 잠을 깨워 운동장을 구르게 하기 일쑤였고, 학교 성적이 안 좋아도 매타작이 벌어졌다. 견디다 못해 두차례 ‘가출’을 했지만 그를 받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동거녀 살인 13년 복역…자식 고아원으로
출소 뒤 갱생보호공단서 독하게 새 삶 꾸려
문씨 같은 사연 가진 23쌍 합동결혼식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서울로 올라와 음식점, 이발소, 공장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18살에 운전면허를 갖게 된 뒤로는 10년 넘게 개인 운전사 노릇도 했다. 그러다 ‘사고’를 저질렀던 것이다.

지난 2004년 8월 출소한 그의 손에는 13년4개월을 교도소에서 일한 대가로 80여만원이 쥐어졌다. 옷을 사고 여관방을 떠돌다보니 열흘도 안 돼 주머니는 비었다. 이틀 동안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다 찾은 곳이 갱생보호공단 서울지부였다. 문씨는 그곳에서 숙식하며 독하게 일했다. 택시와 자재 납품 차량을 운전하면서 한달 용돈으로 채 1만원도 쓰지 않았다.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신부 이씨에게 세탁 편의점을 얻어주기도 했다. 부인 이씨는 “친구 소개로 만났는데 남편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진실하다”며 “때로 사람들이 막말을 할 때면 남편이 불쌍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문씨 부부는 이날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전통혼례장에서 열린 ‘2006 새생활 합동결혼식’에서 대표 신랑·신부이기도 했다. 다른 23쌍의 부부도 남편이 모두 새 삶을 기약한 출소자들이다. 한국갱생보호공단이 마련한 이 특별한 결혼식은 하객 700여명이 몰려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문씨 부부는 “열심히 돈을 모아 시골에 작은 집을 마련해 오손도손 사는 것이 꿈”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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