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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착한 몸매 착한 커피…착착 감기는 그말 참 ‘착하네’

등록 2006-12-21 16:28수정 2006-12-21 23:30

나 착한 몸매. 애니콜 광고의 이효리
나 착한 몸매. 애니콜 광고의 이효리
형용사 ‘착하다’의 놀라운 ‘변신’에 관한 소고
착-하다: 마음이나 행동이 바르고 어질다. (보기) 착한 마음씨, 착한 행동. 우리 아기 참 착하기도 하지. 선하다. 선량하다. 양선하다.

<우리말 큰사전>에서는 형용사 ‘착하다’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착하다’라는 말은 사람의 마음씨 뿐만 아니라 온갖 것들을 꾸미는 말로 쓰이면서 그 의미를 끊임없이 넓혀가고 있고, 때론 서로 모순적인 의미를 한꺼번에 담기도 한다.

얼굴 착해, 성격 착해, 몸매 완전 착해!”= 지난 9월부터 이달 초까지 텔레비전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애니콜 광고는 인기가수 이효리의 얼굴과 몸매가 ‘착하다’고 말한다. 귀여운 표정과 몸에 착 달라붙는 의상 등으로 미뤄보면 ‘착하다’가 곧 ‘예쁘다’, ‘늘씬하다’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광고를 제작한 제일기획 장성수 차장은 “화려한 색상과 얇은 디자인의 휴대전화를 표현하기 위해 ‘착하다’라는 낱말을 사용했다”며 “‘트렌디’한 용어를 찾다가 ‘착하다’는 표현이 영어의 ‘좋다(good)’, ‘아름답다(beautiful)’ 등의 뜻까지 담는 것을 보고 쓰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의미에서 ‘착하다’는 표현을 사용할 때에는 그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나 감정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듯하다. 예쁜 얼굴과 몸매가 보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기 때문에 ‘착하다’는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같은 광고에서 ‘욕심 많은 나쁜 여자’로 등장하는 전지현은 일반인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좌절감을 준다해서 ‘이기적인 몸매’로 표현되기도 한다.

한편, 10대들 사이에서는 ‘훈남, 훈녀’ 등의 말이 전통적 의미의 ‘착한 남자, 착한 여자’를 대체하기도 한다. ‘훈남(녀)’은 외모와 상관없이 상대방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남자(여자)를 뜻한다. 축구선수 박지성, 개그맨 유재석이 대표적인 ‘훈남’으로 꼽힌다.

나쁜 여자, 착한 여자=‘나쁘다’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로 변하면서 그 반대말인 ‘착하다’가 부정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2007년 1월부터 방송될 <문화방송>의 새 일일연속극 ‘나쁜 여자, 착한 여자’에서 ‘나쁜 여자’인 성현아는 강하면서도 아름답고, 원한다면 남의 남자까지도 갖고야 마는 의사로 등장한다. 여기서 ‘나쁘다’는 말은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펴는 여성을 꾸미는 긍정적인 표현이고, 그 반대말인 ‘착하다’는 수동적이고 참기만 하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 ‘착한 여자’로 등장하는 최진실은 다른 여자의 아이가 있는 남자와 결혼해 치매에 걸린 시할머니까지 모시고 살면서도 얼굴 한 번 찌푸려 본 적 없는 인물이다.

나 착한 커피. 히말라야의 선물
나 착한 커피. 히말라야의 선물
먹거리가 착하다?=씨제이주식회사는 해찬들 태양초 고추장을 ‘착한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광고한다. 식품인데도 제품의 맛보다 만드는 사람을 강조하는 이유는, 음식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정서가 매우 강하기 때문. 착한 사람들이 만드는 식품은 한 발 더 나아가 착한 식품이 되기도 한다. ‘착한고기’는 온-오프라인에서 고기를 살 수 있는 정육점의 이름이다. 이 정육점은 산지에서 엄선한 축산물을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때문에 믿고 먹을 수 있다고 자랑한다. 커피, 초콜릿, 설탕 등 저개발국에서 생산되는 원료로 만드는 식품 앞에 ‘착한’이라는 말이 붙으면 공정무역 상품을 뜻한다. 다국적 기업에 의한 살인적인 노동착취가 일반적인 시장에서 저개발국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농약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 상품은 착하다.

나 착한 가게. 3호 숨쉬는 한의원
나 착한 가게. 3호 숨쉬는 한의원
나눔을 실천하는 착한가게=한의원, 학원, 태권도장, 피시방, 옷가게, 카페, 온라인쇼핑몰 등도 착할 수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해부터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는 ‘착한가게’를 모집하고 있다. 현재 전국 81개 가게들이 달마다 600만원을 기부하고 있다. 이들 가게에는 ‘착한가게 ○○호점’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인터넷(www.chest.or.kr)이나 전화(02-6262-3075)를 통해 착한가게에 가입할 수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김효진 과장은 “모든 가게는 영리를 추구하지만 수익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착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상규 연세대 교수(국어학)는 “누군가 사람의 마음씨가 아닌 것에도 ‘착하다’는 말을 처음 썼을텐데, 그 표현이 신선하고 원래 뜻과도 궁합을 잘 이뤄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의미를 추가해 함께 쓰게 된 것 같다”며 “시간이 흘러 확장된 의미가 굳어진다면 새로운 뜻이 인정될 수도 있고, 거꾸로 시큰둥해진다면 한 때의 유행어로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국어교육의 관점에서 이런 사용법이 부정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런 변화는 언어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며 “확장된 의미의 ‘착하다’는 말이 텔레비전 광고에 등장하고 모두들 알아듣는 것을 보면 상당히 많은 세대가 이런 의미변화를 이미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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