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들의 신협인 ‘다람쥐회’에 저축을 붓고 있는 노숙인들이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의 노숙인 복지시설인 햇살보금자리에 모여 ‘고시원 사업’ 구상을 위한 첫 모임을 열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70여명 ‘해보자’ 조합 결성
빈민 신협에 한푼 두푼 저금
400만원씩 10명 채워
하반기쯤 ‘고시원 사업’ 꿈
빈민 신협에 한푼 두푼 저금
400만원씩 10명 채워
하반기쯤 ‘고시원 사업’ 꿈
서울 영등포2동 ㅎ고시원. 빛이 들지 않는 한평짜리 방에선 발을 뻗으면 벽에 닿는다. 한때 싱크대 공장을 하던 이아무개(47)씨는 지난해 2월 이곳에 들어왔다. 사채업자에게 쫓겨 집을 나와 한동안 노숙인 단기체류 시설에서 생활한 뒤였다. 한달에 20만원을 내는 고시원 생활은, 시설에서 ‘칼잠’을 자던 시절보다 훨씬 사람답다. 이씨는 최근 생활비를 쪼개 저금을 시작했다. 거리와 시설을 오가는 노숙인에게 제 몫의 방 ‘한평’을 빌려주는 사업가로 변신을 준비하는 중이다. 현재 이씨와 같은 노숙인 70여명이 빈민들의 신협인 ‘다람쥐회’에 꼬박꼬박 저축을 하고 있다. 한 사람당 400만원씩 모으면 10명을 단위로 ‘고시원 사업’ 조합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지난 11일 오후 노숙인 상담보호센터인 햇살보금자리 2층에는 이들 가운데 40여명의 노숙인이 모였다. 조합 이름을 정하고 운영진을 뽑는 회의의 표정은 다양했다. 내심 미심쩍은 얼굴도 있고, 그저 호기심 어린 표정도 있었다. ‘해보자 모임’으로 조합 이름이 결정된 뒤, 임원을 뽑기 시작하면서 덕담과 농담이 오갔다. “○○는 오자마자 술도 끊고, 대단해! 시켜보자구.” “저는 저금도 안 했어요.” “되든 안 되든 나와봐. 떨어질지도 모른다구.” 넉넉잡아 올 하반기 출범을 목표로 했지만, 노숙인들의 고시원 사업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루살이에 익숙한 이들에게 저축은 어려운 습관이다. 이삼만원이라도 저축하면 꺼내 쓰고 싶어 안달하는데, 여기서는 이를 ‘저축 불안증’이라고 부른다. 노숙인 김아무개(51)씨는 “잡부 일당 5만원을 받아도 밥 세끼 먹고, 담배 한 개비 피우고, 가끔씩 소주 한잔이라도 먹어버리면 남는 돈이 없다”며 “저축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70여명은 최근 몇 달 동안 적게는 2만원에서 많게는 326만원까지 2150여만원을 모았다. 400만원을 모은 ‘저축왕’ 10명이 탄생하면 이들이 저축한 돈 4천만원에 다람쥐회 등의 대출까지 얹어 고시원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1억원이면 건물을 임대하고 인테리어를 해 한평 남짓한 방 50개짜리의 고시원을 운영할 수 있다. 10명의 노숙인 조합원은 거리 생활을 청산하고 고시원 방 한 칸과 월 20만원 가량의 수입도 얻을 수 있게 된다.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정요섭 목사는 “노숙인들도 목표가 있으면 보통 사람들처럼 저축도 하고 꿈도 가지게 된다”며 “첫번째 고시원 조합이 탄생하면 두번째, 세번째는 훨씬 더 빨리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 영등포 일대에는 501개의 쪽방집과 107곳의 고시원이 흩어져 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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