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 종로1가의 노점상들 사이로 포장마차형 점집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런 체인형 점집들은 영화관과 백화점, 할인점 등에서 영업 터전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도심 길거리로 진출하고 있다. 정세라 기자
도심 길거리 ‘포장마차 점집’들
중학생인 김희진(15)양은 한두달에 한번씩 점을 본다. 올해도 친구랑 영화를 보러 갔다가 사주를 봤다. 김양은 “장래 무슨 직업을 택하면 좋을지 물어봤다”며 “끼가 많은 사주라는데 부모님은 공무원이나 선생님이 제일 좋다는 얘기만 한다”고 불평했다. 역술과 타로카드를 겸하는 백화점식 ‘이벤트사주’ 가게들이 늘면서 10대 청소년도 점집에 북적대고 있다. 3천원이면 점을 볼 수 있는 가게들이 영화관과 쇼핑가에 깔려있는 탓이다. 최근에는 서울의 종로와 인사동 일대, 대학가 등에 포장마차형 점집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런 가게들은 고용주가 두세명에서 수십명의 역술인을 두고 반반씩 수익을 나누는 이벤트사주 체인점이다. 점은 대표적인 ‘불안상품’이다. 미래와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정성은 20~30대는 물론 10대 청소년들에게도 점술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대학생 박혜리(22)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20~30번은 백화점 등에서 운세나 사주를 봤다”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무슨 직업을 택하면 좋을지가 항상 궁금하다”고 말했다. 청년실업과 30대 여성의 만혼 풍조, 자영업자의 생활고는 미아리나 주택가 구석의 철학관을 사람이 북적이는 도심으로 끌어냈다. 영등포역 지하상가에서 일하는 역술인 김아무개(47·여)씨는 “20대 젊은애들은 취직이 안 되니까, 30대 여자들은 결혼이 늦어지니까 찾아온다”며 “사업에 실패해서 죽을 날, 죽을 시를 받아달라고 온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종각부터 시작되는 종로상권에는 분식, 액세서리 포장마차들 사이로 ‘3천원’을 써붙인 포장마차 점집들이 북적인다. 이들은 오후 서너시에 영업을 시작해 새벽 두시까지 삶이 불안한 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현재 서울시내에는 20~40명의 역술인을 두고 체인을 운영하는 대형 업체가 서너곳이고, 200~300여명의 역술인이 이벤트사주 업계에서 활동한다. 광화문 지하도에 자리를 잡은 역술인 신진수(58)씨는 “종로일대의 포장마차형 점집은 지난해부터 하나둘 생겨나 지금은 10곳 남짓 영업을 한다”며 “철학관은 최소 3만원은 하니까 가격 경쟁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상업화한 이벤트사주 업계가 설익은 역술인들을 끌어들이는 등 최소한의 도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사주카페를 차렸다가 이벤트사주 업체를 운영하는 아르카나기획의 김수정 사장은 “지난해 백화점 여름 세일 때 노천카페식 가게를 운영했는데 30% 가까이가 청소년 손님이었다”며 “고민상담을 해주는 것을 벗어나 청소년에게 사주의 악운이나 행운을 발설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글·사진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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