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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오후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독도수호전국민연대의 일본 독도.역사 왜곡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반일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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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장기 불태우는 반일시위대 14일 오후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역사왜곡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일장기를 불태우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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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계속되는 일본의 망언과 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도심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15일 서울 광화문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 시민단체 대표가 일본 상징물을 태우자 취재진이 몰려 취재경쟁을 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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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서울 광화문 일본대사관 앞에서 HID(북파공작원)단체가 반일시위를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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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홍정식 활빈단 대표가 할복을 시도하자 경찰이 이를 막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사진설명]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HID(북파공작원)단체가 일본대사관으로 행진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분석] ‘잔혹 반일집회’가 걱정되는 까닭은?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은 연일 비장감이 넘친다. 닭의 생모가지를 치고, 새끼손가락을 자르고…. 미수에 그쳤지만, 배를 긋거나 산 돼지 멱을 따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피의 제전’은 독도 문제를 바라보는 어떤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박박 우기는 일본은 정말 싫다. 그런데 저 사람들 저러는 것도 싫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그들만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독도보다 제 손가락을 귀히 여기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나쁜가? 이럴 땐 꼭 피를 봐야 나라사랑이고 민족사랑인가?
“잘랐으면 됐지 웬 봉합수술?…서민은 몸으로 때워서 민족 지켜야”
섬뜩한 의식을 마다지 않는 방식으로 ‘애국’을 외치고 실천하는 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감행할까. 의문의 실타래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우리 국민들은 너무 무관심하다. 저 놈들이 독도를 가져가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조일환(69)씨는 지난 14일 부인과 아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단지식을 한 뒤에도 담담함을 잃지 않은 채, 국민이 독도 문제에 무관심한 걸 깊이 근심했다.“둘 다 봉합수술을 하지 않고 손가락을 두고 왔다. 잘랐는데 왜 붙이나?”
손가락을 자른 처자에 대한 그의 담담함은 ’멸사봉공’의 극한을 보여주는 듯하다. 조씨 자신이 이미 74년 육영수씨 피살 직후 일본대사관 앞에서 손가락을 자른 바 있다. 그는 “학자들은 글로써 애국하고, 정치인은 정치로써 애국하고, 서민은 몸으로 때워서라도 민족과 국가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안병욱 교수 “관제데모의 잘못된 관행이 간접적 영향”
그러나 그의 진지함에서 묻어나는 진부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국사학과)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부터 북한 문제나 일본 문제를 국내정치에 써먹으려고 이용했던 관제데모의 잘못된 관행이 간접적 영향을 끼친 것 같다. 30여년 궐기대회의 문화가 민주화된 뒤로도 제대로 정리되거나 승화되지 않아 이런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일본대사관 앞에서 손가락을 자르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적절하고 설득력 있는 대응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의 지적은 심리학 이론으로도 뒷받침된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과)는 “인간은 좌절감을 파괴적인 행동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나름대로 학습된 내용에 따라 고정된 행동방식을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좌절감을 손가락을 자르거나 화형식을 하는 행위로밖에 표출하지 못 한다”며 “예전 같으면 이런 행동이 지사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사회적으로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고 생뚱맞다는 반응을 부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관제데모의 뿌리깊은 학습효과…그들을 보면 박정희가 생각난다”
이들은 이념적 경향에서도 매우 뚜렷한 공통점을 보여준다. 때만 되면 예외없이 극우적 목소리를 내온 단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독도 문제를 놓고 비슷한 행동양식을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자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박정희가 생각난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현대사 전공)는 “박정희 정권 때도 단지식도 하고 엄청나게 반일 데모도 했었다”며 “친일파에서 친미파로 변신한 뒤 반일감정을 고취했던 박정희의 캐릭터가 극우단체들의 최근 반일 행태를 푸는 열쇠”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정희의 캐릭터가 ‘다중인격’적이어서인지, 그를 통해서 극우단체들의 행태를 설명하는 것도 매우 까다롭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배는 축복”이라는 일제 찬양성 글을 쓴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와 그의 서포터스를 자청하고 나선 지만원 시스템연구소 소장,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 같은 인물들이 지금 일본대사관 앞에서 극단적인 반일 행태를 보여주는 인물들과 정치적 사안에서 거의 한목소리를 내온 사실을 떠올리면 머리 속은 한층 복잡하게 꼬인다. 왜 이들은 유일하게 일본 문제 앞에서 분열되는 것일까.
한홍구 교수는 “한승조 교수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친일파라고 커밍아웃한 게 아니라 상황이 변하면서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아우팅당해 본색이 드러난 것으로 본다”며 “한쪽이 ‘사고’를 치고 뒷수습을 하고 있을 뿐 일본에 대한 양쪽의 본색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친미파들이 반일감정을 자극하고 이용한 것은 우리의 반일감정이 인종주의가 아닌 역사적 피해 경험에서 나온 것이어서 대중에게 강한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라며 “극우세력이 국민 호소력을 잃어버린 걸 만회하려고 더욱 극단적인 반일 행태를 보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자의 논리’ 숭배 앞에선 ‘친일=반일’ 등식 성립”
극우세력 사이에 ‘박정희=반공=친미’의 등식은 뚜렷하게 공유되지만 일본에 대한 태도는 갈릴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한승조 류의 ‘박정희=친일=반공=친미’의 등식은 부분적이거나 예외적인 경우라는 것이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팀장은 “해방 이후 권력투쟁 과정에서는 친일파들이 생존수단으로 미국과 손을 잡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붙들었기 때문에 그런 등식이 성립된다”면서도 “친일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운 세대들이 극우세력 안에서도 다수가 된 지금은 문화적으로 그런 등식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김 팀장은 “젊은 우파들 가운데는 심지어 친미에 대해 헷갈려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에 대한 태도가 극과 극으로 갈리면서도 이들이 나머지 모든 부분에서 같은 목소리로 합창할 수 있는 사정은 무엇일까.
“소설가 이문열씨는 ‘을사늑약은 합법’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독도를 북한에 미사일 기지로 내어주자’는 주장을 하지 않느냐.” 김 팀장은 “양쪽은 강자의 논리, 힘의 논리를 숭배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며 “힘이 약해서 일본에 먹힌 현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하자는 태도와 힘의 방식으로 일본을 쳐부수자는 태도는 사실상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강자의 논리는 미국의 침략전쟁까지 ‘선’으로 여기며, 반일운동을 하면서도 과거사 규명을 ‘좌파의 음모’로 공격하는 태도로 연결된다는 얘기다.
독도를 사랑하는 방식이 다케시마를 탐내는 방식을 따라야 하나?
한국내 극우세력의 극단적인 행동이 독도 문제 해결을 더욱 꼬이게 할 거라는 우려도 있다. ‘탈민족주의자’ 임지현 한양대 교수(역사철학부)는 “한국사회가 들끓으면 일본의 극우파들이 양심적 좌파들에게 ‘한국의 민족주의자를 도와준다’는 비난을 퍼붓는다”며 “흥분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탈민족주의가 아니더라도, 독도를 사랑하는 방식이 다케시마를 탐내는 방식보다 엽기적이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지난 15일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극우단체들말고도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 남측준비위원회 청년학생본부’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의 항의 표시는 ‘종이 비행기’를 접어 일본대사관 안으로 날리는 것이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안영춘 김순배 기자 j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