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상 강간죄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피해자가 ‘주관적으로’ 성폭행당했다고 판단해 가해자를 고소했다면 무고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성폭행 피해사실을 드러냈다가 오히려 역고소당할까봐 두려워 고소 자체를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이홍권)는 16일 애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거짓 고소한 혐의(무고)로 기소된 ㅎ(28)씨의 항소심에서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ㅎ씨가 좀더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거부하지 못했더라도 상대편 남성이었던 ㅇ씨의 육체접촉 시도에 전혀 강압성이 없었다고 볼 수 없다”며 “또 ㅇ씨의 행위가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라는 강간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ㅎ씨가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고소했을 뿐 적극적으로 거짓을 꾸며낸 것은 아니므로 무고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2003년 당시 사귀던 남성 ㅇ씨의 무리한 요구로 여러 차례 성관계를 한 ㅎ씨는 경찰에 성폭행 혐의로 ㅇ씨를 고소했다가, 수사과정에서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지자 고소를 취하했다. 반면 ㅇ씨는 ㅎ씨를 무고 혐의로 역고소해, 1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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