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끊어가고… 맨홀뚜껑 뜯어가고…
#1. 전화판매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12월 실업자가 된 윤아무개(32)씨는 다섯살배기 딸과 부인, 부모를 부양하려 거리에 나서 종이상자와 폐품을 주워 팔았다. 신용카드 빚이 1천만원이나 있어 생활은 빠듯했다. 그러던 어느날 윤씨는 “전화단자함이 스테인리스 스틸로 돼있어 값고 비싸고 훔치기 쉽다”는 고물상 주인의 말을 우연히 들었다. 유혹을 못 이긴 윤씨는 지난달 말부터 서울 관악구 신림·봉천동 일대 다가구주택의 외벽에 붙어 있는 전화단자함을 50여차례 뜯어내 팔았다. 그렇게 해서 윤씨가 손에 쥔 돈은 100만원 가량이었다. 13일 구속영장이 신청된 윤씨는 “생활비 때문에, 돈이 없어서 훔쳤다”며 울먹였다.
#2. 지난달 27일 노점상 김아무개(42)씨는 경찰에 상습절도 혐의로 붙잡혔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서 열흘 동안 가로등 전기 배선을 몰래 빼내 온풍기와 간판 조명에 써온 혐의였다. 김씨가 경찰에 털어놓은 사연도 딱했다. “최근 사고로 머리를 다친 아들의 치료비를 대느라 가지고 있던 발전기를 44만원에 팔아버렸다”는 것이다.
생활비를 대기 위해 주변의 공공시설물을 노리는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맨홀 뚜껑과 전선, 다리 구조물 따위가 ‘단골 품목’이다. 그동안 도난당한 전선 길이를 보면, 지난 2003년 59㎞가량이었으나 해마다 갑절 넘게 늘어 2005년 329㎞, 지난해에는 629㎞에 이르렀다.
이웅혁 경찰대 교수(행정학)는 “공공시설물은 다른 재물에 견줘 접근하기 쉽고 검거될 확률도 적어 범죄에 용이한 측면이 있다”며 “일자리 부족과 불황 등 사회 문제를 치유해야 이런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진식 기자, 정유경 수습기자 seek16@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