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극진한 전관예우
김진기(58) 전 대구고법원장이 퇴임한 지 사흘 만에 굵직한 형사사건을 맡아 법조계의 ‘전관예우’ 관행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지난 5일 현직에서 물러난 김 전 원장은 8일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은 손이목 경북 영천시장의 항소심 변호인을 맡겠다며 재판부에 선임계를 제출했다. 선거법을 어겨 1심에서 벌금 250만원을 선고받은 신현국 경북 문경시장도 김 전 원장에게 항소심 변호를 맡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변호인 수임료는 보통 500만∼600만원씩 받는 일반 형사사건보다 훨씬 많은 수천만원 선에서 결정된다. 특히 항소심에서 단체장들이 현직을 유지할 수 있는 벌금 100만원 아래로 형량이 낮춰졌을 경우,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난 ‘성공보수’가 따른다.
전관예우는 전국적으로 고루 나타나는 고질적인 병폐이지만 대구에서는 특히 심각하다. 지난해 10월 대구고법·지법에 대한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02∼2006년 4년 동안 대구지역에서 구속과 보석사건 수임률 1∼3위를 차지한 변호사들이 모두 ‘전관’들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2002년에 개업한 뒤 2003년에 구속사건 154건을 도맡아 극진하게 전관예우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 법조계 안팎에서는 “전관예우를 제도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지 않으냐.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없지는 않지만, 젊은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적어도 6개월∼1년 정도는 퇴직 후 자신이 근무했던 지역에서는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도록 하거나 형사사건의 수임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경북대의 한 교수는 “재판이 공정해야 하는데 전관예우는 변호사를 보고 손을 들어주는 법조계의 나쁜 관행”이라며 “이는 결국 사법 불신으로 이어져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대구/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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