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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가정폭력 남편살해 여성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첫 인정

등록 2005-03-18 18:41수정 2005-03-18 18:41

서울고법, 징역5년으로 감형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에서 아내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인정한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주흥)는 18일 여러 해에 걸쳐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살인)로 구속기소된 ㅅ(47·여)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면서, “ㅅ씨가 남편의 계속된 폭력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이고, 사건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던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충격적인 경험이나 심한 감정적 스트레스를 겪었을 때의 기억을 반복해 떠올리는 과민상태가 계속 이어지는 증상으로, 일종의 정신과적 질환이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은 대부분 남편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온몸이 떨리는 등의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를 인정한 판례는 없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수년 전부터 남편의 구타와 욕설, 의처증으로 인한 의심이 계속되면서 남편이 귀가할 시간이면 공포에 떨고 사소한 자극에 놀라는 등 ㅅ씨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 매우 심해졌다”며 “사건이 일어나던 순간에도 남편한테 심한 모욕을 당하자 흥분한 나머지, ㅅ씨가 남편을 ‘형체만 시커멓게 보이는 저승사자’로 인식할 정도로 해리장애(의식이나 지각 이상이 생겨, 방어수단으로 현실을 부정하는 현상)에 빠지면서 억제력을 잃고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1991년 결혼한 ㅅ씨에게 가정폭력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96년이었다. 도박에 손을 대 재산을 모두 날린 남편의 술주정이 시작된 것이다. 남편은 아들의 혈액형 검사결과가 이상하게 나왔다면서 몇 년 뒤 의처증 증세까지 보였다. 나중에 검사가 잘못됐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잘 살아보자’며 축산물을 가공·판매하는 가게를 차렸지만, 남편의 폭력은 점점 심해졌다. 심지어는 너무 심하게 맞아 퉁퉁 부은 ㅅ씨의 얼굴을 시동생이 알아보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4월 어느 날, ㅅ씨는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남편을 찾아가 ‘가게로 돌아가자’고 잡아끌었지만, 남편이 다짜고짜 심한 욕설을 퍼붓는 바람에 둘 사이에는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다. 순간적으로 격분한 ㅅ씨는 가게에서 흉기를 들고 나와 남편을 찔러 숨지게 했다. 검찰은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ㅅ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는 ‘단순 우울장애’라는 정신감정결과를 받아들여 징역 8년을 선고한 바 있다.

한편 이번 사건의 법률지원을 맡은 ‘서울 여성의 전화’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하는 예도 많은데, 이런 증상을 심신미약 상태로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형량이 무거워 아쉽다”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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