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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하루벌어 하루 먹어”…짐싸 떠나는 후손도

등록 2007-02-27 07:21

독립유공자 한용발 선생의 외손자 최영규씨의 신길동 월셋집에는 살림살이 하나 없이 적막감만이 흘렀다. 당뇨를 앓고 있는 최씨는 온종일 집에 누워 지내고 있다. 이들 가족의 생계는 아들 내외가 건설현장 일용직과 식당일로 꾸려나가고 있다. 왼쪽부터 최씨, 손자 종대, 부인 남봉래, 아들 최일수씨. 박종식 기자 <A href="mailto:anaki@hani.co.kr">anaki@hani.co.kr</A>
독립유공자 한용발 선생의 외손자 최영규씨의 신길동 월셋집에는 살림살이 하나 없이 적막감만이 흘렀다. 당뇨를 앓고 있는 최씨는 온종일 집에 누워 지내고 있다. 이들 가족의 생계는 아들 내외가 건설현장 일용직과 식당일로 꾸려나가고 있다. 왼쪽부터 최씨, 손자 종대, 부인 남봉래, 아들 최일수씨.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독립유공 후손들 ‘귀화 8개월’ …‘극빈층’ 내몰린 삶
몸 아프면 그나마 일거리도 끊겨
“새학기 딸 교복값은 또 어떻게…”

“한국땅 좋다고 애들 다 데리고 들어와서 …, 어우, 내가 모르게 눈물도 많이 흘렸어, 별 맘 다 먹었지요.” 3·1 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렀던 한용발 선생의 외손부 남봉래(56·서울 신길동)씨는 지난해 7월 아들 내외 등 다섯 식구와 함께 특별귀화했다. 할아버지의 고향을 그리며 국적을 신청한 지 1년6개월 만이었다. 정착금 지급 대상자인 남편 최영규(59)씨는 약 없인 버틸 수 없는 당뇨 환자가 됐고, 자신 역시 디스크로 일을 하지 못한다. 건설 노동자인 아들 일수(34)씨와 밤 10시가 돼야 퇴근하는 며느리 배수연(30·식당 종업원)씨가 맞벌이를 하지만 가난은 좀체 물러서지 않는다.(사진) 약값만 한 달에 40만원이다. 남씨는 “아들 내외가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우리가 너무 아파서 부담이 된다”며 말을 흐렸다.

할아버지는 독립투쟁을 했지만, 후손들은 할아버지 나라에서 환대는커녕 지난한 생존투쟁에 내몰리고 있다.

특별귀화자 16가구는?
특별귀화자 16가구는?
“중국으로 다시 가야 합니까?”=하루 13시간씩 식당일을 하는 아내를 맥없이 지켜봤을 뿐 얼마를 버냐고 물어본 적이 없다. “미안하니까요. 고물상도 알아보고, 건설일도 알아봤죠. 오늘도 일자리 찾다 오는 길이지만 귀화해 한국에 온 뒤로 제 손으론 한푼도 벌어보질 못했거든요.” 영주귀국한 지 이달로 5개월째인 우근하(56·서울 구의동)씨의 말이다.

중국에서 공무원이었던 우씨에게 돌아오는 ‘길’도 쉽지 않았다. 한국 친척이 있는 재중동포에게 주어지는 초청비자를 중국 선양영사관에서 받는 데만 2년이 걸렸다. 이후 9개월이 더 지난 지난해 7월에야 겨우 국적을 얻었다. 독립 유공자인 외할아버지 손병헌 선생이 1921년 중국으로 망명했으니 실로 85년 만의 귀향이다.

하지만 지난 23일 그는 결국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사진) “공무원 때 알았던 무역회사에서 일을 도와주고 돈을 좀 벌 수 있다고 해서요.” 함께 귀화한 아내 김정옥(49)씨가 “나이를 속여 가면서까지” 식당일로 벌어온 80만~120만원으로 겨우 가계를 유지해 왔지만 그 일도 더는 할 수 없다. 디스크와 관절염으로 다리가 퉁퉁 부었다. 다섯평짜리 단칸방에서 월세살이하며 매달 30만원을 내면 생활비 빼고 남는 게 없다.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하는데 살 수가 없네요, 굳이 여기 있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프면 안 됩니다”=유공자의 손자·손녀만 해도 나이는 50~60대다. 선택할 만한 일자리가 많지 않다. 특별귀화자 27명 중 회사·공장 등 1년 단위 계약이 가능한 직장 근무자는 3명에 불과하다. 남영희(69·남인상 선생의 손녀)씨의 딸 김선녀씨는 “우리한테 중요한 게 고정적으로 일하는 건데, 중국에서 왔다는 딱지까지 붙어서 잘 안 뽑아주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일자리 불안은 주거·건강 문제로 직결되고 이는 다시 노동활동을 위협한다. 초청비자로 03년 8월 처음 입국해 주로 식당 종업원 일을 했던 김광숙씨는 당뇨가 심해져 지난해 절반을 쉬었다. 두달째 밀린 방값은 고사하고 1만원짜리 건강보험료도 두 달이 밀린 상태다.

왕산 허위 선생의 손자 허게오르기(63)씨는 아들과 함께 서울 안암동 대학가에서 하숙한다. 두 사람 하숙비만 72만원, 한 달 월급의 7할이다. 지난해 1월 키르기스에서 입국자금 4만원만 쥐고 온 그가 달리 선택할 길은 없다. 강기운 선생의 손녀 강정자(49)씨의 말마따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견디는” 이들은 감히 아플 여유가 없다.

“저축요? 허허, 허허허”=저축을 하냐는 질문에 우근하씨는 그저 길게 웃었다. 당장 딸(화·24)의 비싼 대학등록금도 낼 대책이 없는 처지다. “중국에서 대학 3년만 다니다 와서 뭐라도 하려면 배워야 하겠는데 ….” 이들에게 더 가혹한 건 앞날을 상상하는 일이다.

<한겨레> 실태 조사 결과, 16가구 가운데 저축 생활자와 개인보험 가입자는 각각 두 가구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생활비 자체가 부족해 저축은 엄두도 못낸다”는 김선녀씨는 “보험이 안 되더라도 더 싸기 때문에 아프면 차라리 중국으로 간다”고 말했지만, 그건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일 뿐이다.

중국에 남겨둔 자녀나 가족에게 송금을 하는 이는 다섯 가구뿐이다. 한용발 선생의 손녀로 딸(이단단·15)과 함께 특별귀화한 한금화(43·경북 의성)씨의 말이 안타깝다. “어제(14일)도 딸이 공부 못 따라간다고 울고불고 난리였어요. 학원비가 17만원인데 그거 못 보내는 게 제일 마음 아픕니다. 돈 생기면 학원 갖다주고 돈 생기면 갖다주고 했는데 이제 사정이 어려워서. 이번에 중학교 올라가는데 개학하면 교복, 급식비, 교재 이런 거 다 어떻게 또 합니까?” 임인택 기자, 최원형 수습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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