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후손 우근하씨가 23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탑승수속을 하고 있다. 지난해 7월 특별귀화했던 우근하씨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중국으로 돌아갔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독립유공 후손들 ‘귀화 8개월’ …힘겨운 유족등록 절차
정부의 황당한 업무처리에 특별귀화자들은 대부분 화가 나 있었다. 얼추 1년6개월에 이르는 법무부의 자격심사 기간을 거쳐 귀화했음에도 다시 자격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데 대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 분노
중국에서 교사였던 김봉수(44)씨는 “이것저것 다 냈는데 전화하면 기다리라는 말밖에 없고, 나와 아버지 관계를 의심하는 투로 하는 게 너무 기분 나쁘다”고 말했다. “보훈처가 조금만 신경쓰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 중국에서 40년 살았으니 거기 한번만 가봐도 다 되는 것 아니겠냐”고도 했다. 1년2개월의 긴 심사과정을 거쳐 국적을 취득한 그는 지난해 9월께 유족 등록 신청을 했다. 법무부에 제출된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서류들이 보훈처에 제출된 지 5개월째다.
지난해 11월부터 보훈처의 유족 등록 통보만 기다리는 우근하(56)씨는 “이미 영사관에 내는 자료들부터가 다 비슷한 것들”이라며 “한쪽(법무부)은 옳다 하고 한쪽(보훈처)은 아니라고 하니, 도대체가 말이 안 통하고 납득도 안 되는 나라”라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짜리 증손자가 할아버지는 가만히 있지 뭐하러 만세를 불러서 우릴 이렇게 고생시키냐고 해요. 5살짜리 증손자는 유치원에 가야 하는데 면사무소도, 보훈청도 도와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유공자 후손이라고 유세 떨려는 게 아니라, 내가 너무 부아가 나서 애비한테 이놈 절대 군대 보내지 마라고 했어요.” 한용발 선생의 며느리 권태월(69)씨는 목청을 높였다.
# 황당
“유족 등록 뒤, 정착금 얘기를 듣고 문의하려고 안동(지청)에 찾아갔더니 서울로 가라고 해서 삼각지(서울지방청)로 갔어요. 그런데 또 여의도(국가보훈처)에서 담당한다길래 거기로 갔죠. 김○○ 선생이 ‘(유족 등록) 심의 중이니까 기다려 달라, 서류가 완벽하지도 않다’고 하길래 후손으로 확인돼서 귀화된 거 아니냐 물었죠. 법무부 일과 보훈처 일은 관계가 없다, 일단 기다려 달라, 그러더라구요.” 한금화(43·경북 의성)씨는 5개월째 보훈처의 통보만 기다리고 있다.
허블라디슬라브(56)씨는 “족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거듭 서류 보완을 요구한 보훈처에 80만원짜리 디엔에이 조사 결과까지 넘겨 지난달 25일 겨우 유족 등록이 됐다. 특별귀화 자격심사 때 이미 법무부에 제출한 자료인데, 보훈처가 다시 원본을 요구해 병원에서 추가 지급(5만원)하고 구했다. 친형 게오르기(63)씨는 “그 돈이 없어 디엔에이 조사도 못했다”고 했으나 유족 등록은 됐다. 이들은 이제 다시 정착금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 슬픔 그럼에도 이들은 보훈처의 지원을 포기할 수 없다. 강정자씨는 “누군가는 정착금을 보고 온 게 아니냐고 할까 걱정됩니다. 아니거든요. 하지만 너무 힘든 상황이라 기대지 않을 수가 없네요. 될 거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해주면 안 될까요?”라고 했다. 권태월씨는 “하도 형편이 안 좋아 안동지방청에다 대출이라도 좀 해주면 안 되느냐고 울면서 하소연도 했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상당수 특별귀화자들은 “(경과를 물어보려고) 자주 전화하면 보훈처가 싫어할까봐 그러지도 못한다”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같은 이유로 사진 취재를 꺼리는 이도 있었다. 설령 당장 내일 유족으로 인정·등록돼도 정착금이 나오는 건 아니다. 다시 정착금 지급 신청을 해야 한다. 세번째 심의의 시작일 뿐이다. 독립유공자 후손이기도 한 역사학자 김병기씨는 “(예산 때문에) 한국 보훈정책은 어떻게 하면 떨어뜨릴까가 중심”이라며 “자손이 없으면 공훈 심사가 잘 통과된다는 말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성국 국가보훈처 공훈심사과장은 “중국 귀화자가 많은데 자료의 신뢰성이 떨어지거나 자료가 없어서 현지에서 직접 확인해야 할 일도 많아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덕일 한가람역사연구소 소장은 “심사가 어려운 게 아니라 제출된 서류만 보는 상황에서 전문가가 1주일이면 판단할 수 있다”며 “전문성이 부족한데도 국가보훈처가 정작 전문인력을 채용하지는 않고 당사자에게 전적으로 유족임을 증명해 오라고 요구하는 게 우선 잘못”이라고 말했다. 임인택 기자, 최원형 수습기자 imit@hani.co.kr
독립유공 후손들 정착금을 받기까지
“유족 등록 뒤, 정착금 얘기를 듣고 문의하려고 안동(지청)에 찾아갔더니 서울로 가라고 해서 삼각지(서울지방청)로 갔어요. 그런데 또 여의도(국가보훈처)에서 담당한다길래 거기로 갔죠. 김○○ 선생이 ‘(유족 등록) 심의 중이니까 기다려 달라, 서류가 완벽하지도 않다’고 하길래 후손으로 확인돼서 귀화된 거 아니냐 물었죠. 법무부 일과 보훈처 일은 관계가 없다, 일단 기다려 달라, 그러더라구요.” 한금화(43·경북 의성)씨는 5개월째 보훈처의 통보만 기다리고 있다.
허블라디슬라브(56)씨는 “족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거듭 서류 보완을 요구한 보훈처에 80만원짜리 디엔에이 조사 결과까지 넘겨 지난달 25일 겨우 유족 등록이 됐다. 특별귀화 자격심사 때 이미 법무부에 제출한 자료인데, 보훈처가 다시 원본을 요구해 병원에서 추가 지급(5만원)하고 구했다. 친형 게오르기(63)씨는 “그 돈이 없어 디엔에이 조사도 못했다”고 했으나 유족 등록은 됐다. 이들은 이제 다시 정착금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 슬픔 그럼에도 이들은 보훈처의 지원을 포기할 수 없다. 강정자씨는 “누군가는 정착금을 보고 온 게 아니냐고 할까 걱정됩니다. 아니거든요. 하지만 너무 힘든 상황이라 기대지 않을 수가 없네요. 될 거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해주면 안 될까요?”라고 했다. 권태월씨는 “하도 형편이 안 좋아 안동지방청에다 대출이라도 좀 해주면 안 되느냐고 울면서 하소연도 했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상당수 특별귀화자들은 “(경과를 물어보려고) 자주 전화하면 보훈처가 싫어할까봐 그러지도 못한다”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같은 이유로 사진 취재를 꺼리는 이도 있었다. 설령 당장 내일 유족으로 인정·등록돼도 정착금이 나오는 건 아니다. 다시 정착금 지급 신청을 해야 한다. 세번째 심의의 시작일 뿐이다. 독립유공자 후손이기도 한 역사학자 김병기씨는 “(예산 때문에) 한국 보훈정책은 어떻게 하면 떨어뜨릴까가 중심”이라며 “자손이 없으면 공훈 심사가 잘 통과된다는 말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성국 국가보훈처 공훈심사과장은 “중국 귀화자가 많은데 자료의 신뢰성이 떨어지거나 자료가 없어서 현지에서 직접 확인해야 할 일도 많아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덕일 한가람역사연구소 소장은 “심사가 어려운 게 아니라 제출된 서류만 보는 상황에서 전문가가 1주일이면 판단할 수 있다”며 “전문성이 부족한데도 국가보훈처가 정작 전문인력을 채용하지는 않고 당사자에게 전적으로 유족임을 증명해 오라고 요구하는 게 우선 잘못”이라고 말했다. 임인택 기자, 최원형 수습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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