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직원들과 공모해 진료비를 이중으로 청구하거나, 보험대상 진료비를 비보험 처리해 부당 이득을 얻은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서울시내 대형 병원의 병원장들이 대법원에서 무더기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의 이날 판결로, 검찰이 지난 1997년 26만1470명의 환자를 상대로 158억3천만원의 진료비를 더 받아낸 사실을 적발한 사건과 관련해 결과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됐다.
대법원 2부(주심 이강국 대법관)는 보험대상 진료를 비보험으로 처리하거나 진료비를 이중으로 청구하는 등 진료비를 과다 청구한 혐의(사기)로 기소된 김아무개씨 등 서울시내 종합병원장 10명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씨 등 병원장들이 진료비가 과다하게 징수되고 있다는 사실을 대략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병원의 진료수가 변경은 병원장의 단순한 지시나 요청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진료수가 항목을 전면 재검토해 이를 바로잡지 않았다는 이유로 병원장들이 ‘묵인’의 방법으로 직원들과 공모해 사기에 가담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 관계자는 “수사 당시에 최종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지 논란이 있었는데, 기획과장이나 원무실장만 기소하면 봐주기 수사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어, 제도개선 목적 차원에서 병원장들만 대표로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7년여 동안 재판을 끌었던 법원이 병원들의 사기 여부를 인정하면서도 병원장들의 공모 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부분은 납득이 되지 않고, 병원장마다 개입 정도가 다 다른데, 같은 논리로 판결한 부분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검찰은 지난 1996∼1997년 사이 서울시내 대형 병원 13곳이 5억∼24억원씩의 진료비를 과다청구한 혐의를 적발해 10곳의 병원장은 기소하고, 3명의 병원장은 약식기소 했다. 기소된 10명의 병원장들은 1심에서 2천만∼3천만원씩의 벌금을 선고 받았으나, 2002년 8월 항소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