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헌 변호사(왼쪽)가 27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새 형사재판장들에게 ‘사법부의 나아갈 방향’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고양/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승헌 변호사, 사법부 과거 쓴소리
“한 재일동포 학생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변호를 맡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혼·분식을 한다’고 말한 것까지도 국가기밀 누설로 기소돼 있었다. 판사를 찾아가 ‘이게 말이 되냐’고 했더니 판사도 수긍하더라. 하지만 나중에 판결문을 보니 ‘혼·분식 장려라는 중요한 국가 식량정책을 외부에 밝혀 국가기밀을 누설했고’라고 씌여 있더라.”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로 꼽히는 한승헌(73) 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이 형사재판 법관들에게 법원의 부끄러운 과거에 관한 쓴소리를 던졌다. 한 변호사는 27일 경기도 고양 사법연수원에서 신임 형사재판장 140여명을 상대로 강연을 하면서, “법복 속의 권위에 안주하지 말고 지난날의 잘못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며 “법률 전문가라는 기능적 존재에 머물기보다는 보다 깊은 ‘시대의 양심’이 되기 위해 노력할 때 국민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변호사는 긴급조치 판결과 관련해 “한 쪽에서는 ‘당시 법의 잣대로 판결했는데 왜 지금 기준으로 평가하느냐’며 불만을 제기하는데, 문제는 당시에 사안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무조건 중형을 선고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판사에 대한 ‘석궁 테러’가 일어나자 대법원에서 법관 신변보호에 관한 법률을 만들겠다고 나왔지만, 이런 식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며 △당사자의 신분에 따라 재판 진행에서 차별하지 말 것 △정치인 등에 대한 재판을 지연하지 말 것 △양형 편차를 줄일 것 △당사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판결문을 쓸 것 등을 주문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