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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만약 이순신의 눈으로 독도를 본다면

등록 2005-03-19 02:02수정 2005-03-19 02:02

KBS 사극 ‘불멸의 이순신’ 이미지 사진. <출처 KBS 홈페이지>
KBS 사극 ‘불멸의 이순신’ 이미지 사진. <출처 KBS 홈페이지>

[주장] ‘엽기·잔혹 반일집회’는 과연 애국인가’ 비난에 답합니다

비난받을 각오를 하고 쓰는 글이 가끔 있다. 어떤 글이든 찬·반으로 반응이 엇갈리게 마련이지만, 지배적인 대중정서를 거스르는 글을 쓸 때면 반응의 쏠림 현상은 감수해야 한다. 이럴 땐 글이 이성적이라고 해서 반응도 이성적일 거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때론 육두문자도 미리부터 각오해야 한다.

‘엽기·잔혹 반일집회’는 과연 애국인가’(원문보기)라는 기사가 그런 경우였다.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은 연일 비장감이 넘친다. 닭의 생모가지를 치고, 새끼손가락을 자르고…. 미수에 그쳤지만, 배를 긋거나 산 돼지 멱을 따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피의 제전’은 독도 문제를 바라보는 어떤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 ’

독자의 반응은 웬만큼 예상할 수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땅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자라난 사람 가운데 지금 일본에 대한 혐오감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승조 명예교수를 떠올리더라도, 솔직히 그의 마음 속이 궁금할 따름이지 그가 이 사태를 즐길 거라고 단정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박박 우기는 일본은 정말 싫다. 그런데 저 사람들 저러는 것도 싫다는 생각이 든다면…’ 정도의 ‘안전장치’로 독자들의 반응을 돌려놓을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비난을 감수하고 글을 쓴 심보는 이런 거였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그 글을 쓴 심보는 뭐였을까. 일본에 대한 항의 자체를 문제삼은 게 아니라는 건 누가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다만 좀더 설득력 있는 항의 방법을 찾아보자는 뜻이었다.

‘인터넷 한겨레’에 오른 독자들의 비난을 요지별로 정리해 보면 이렇다. 첫째가, ‘다 같이 뭉쳐 일본에 대항해 싸워도 모자랄 판에, 임진왜란 앞두고 당파싸움 하자는 거냐’였다. 둘째는, ‘한겨레는 박정희가 그렇게 미우냐. 이런 문제에까지 박정희를 끌어들이느냐’였다. 마지막으로, ‘엽기·잔혹 중에서도 가장 엽기·잔혹은 분신자살 같은 거다. 운동권이나 노동자들이 분신할 땐 침묵하거나 옹호하던 <한겨레>가, 일본에 항의하느라 좀 섬뜩한 방법을 썼기로서니 그걸 욕하는 건 이중적 태도’라는 거였다.

이 글은, 말하자면 이런 비난에 대한 답글이다. 인터넷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강점을 살려 의제를 키우고 퍼뜨리는 방법으로 삼으려는 뜻이다. 독자들의 반응을 웬만큼 예상했기에 답글의 필요성도 미리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던 터였다. 다만 분신을 언급한 세 번째의 비난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기습을 당한 듯한 당혹감도 들었고, 숭고한 희생이 매도된 것 같아 황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별적 희생들에 대해 주관적 가치를 부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나아졌다. 이 글은 마음을 다스리고 난 다음에 쓰여지기 시작했다.

독도를 사랑하는 그대, ‘원균인가 이순신인가?’

▲ 지난 17일 오전 국회에서 한화갑 민주당 대표와 당원들이 독도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울 것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김경호기자

‘문제의 글’이 일본의 도발 앞에서 모두 뭉쳐 대항해 싸워도 모자랄 판에 적전분열을 부추긴 글인지부터 차분히 따져보자. 그런 반응을 보인 독자들은 그 글에서 임진왜란 직전 조선통신사로 다녀온 황윤길과 김성일이 왜침 가능성을 두고 서로 다른 보고를 올린 일을 떠올렸음 직하다. 당파적 이해에 매달려 사실관계를 왜곡함으로써 왜침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역사는 뼈아프다. 하지만 문제의 글이 독도에 대한 일본의 흑심이나 음모를 부정한 대목은 없다. 사실관계는 글 안에서 자명하다.

주말 사극 <불멸의 이순신>의 최근 방송편을 보면 선조가 수군을 폐하자 이순신이 궁궐 앞에서 ‘연좌시위’를 하는 장면이 있다. ‘역사적 허구’에 입각한 설정이지만, 실제로 수군이 폐지됐다면 우리의 식민지 피지배 역사는 15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을 것이다. 왜침을 앞둔 긴박한 시기에 어명을 거스른 이순신의 가슴에 ‘분열주의자’의 주홍글씨를 붙일 일은 아니다. 사실을 가리거나 비틀지 않고 철저히 사실에 입각해 판단하고 주장했다면, 설령 이순신의 판단이 틀렸더라도 그 주장은 건설적이다.

일본 시마네현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키자 한국의 한 정당 대표는 독도에 이순신 동상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독도에 군대를 파견해야 한다는 주장과 주한일본대사를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도 국회에서 나왔다. 하지만 정작 이순신이라면 이런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당장 바다로 나아가 왜군을 박멸하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때를 기다린 이순신을 역적으로 몰아부친 선조나 원균의 주장과 21세기 대한민국 정치권의 주장이 서로 닮았고, 그런 정치권이 한사코 이순신을 숭상하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로 보이기까지 한다.

독도와 다카키 마사오는 행복하게 공존할 수 없다

▲ 지난 17일 독도의 동도 선착창에 세워놓은 대한민국 동쪽 땅끝 표석 뒤로 보이는 아름다운 서도의 모습. 강재훈 기자

한겨레가 박정희를 너무 미워하는 나머지 이런 문제에까지 그를 끌어들였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역시 사실관계를 토대로 해명하고자 한다. 2004년 6월 <연합뉴스>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은 1천여 쪽의 ‘국무부 (기밀) 대화 비망록’에는 65년 5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한·일 수교를 한 달 앞두고 워싱턴을 방문해 딘 러스크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나눈 대화가 기록돼 있다.

보도에 따르면, 딘 장관은 박 대통령에게 “독도에 한·일이 공동 관리하는 등대를 세우고 그 섬이 어디에 속하느냐를 결정하지 말고 남겨둬서 자연히 (문제가) 사라지게 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공동 등대는 잘 되지 않을 것”이라며 “비록 작은 것이지만 화나게 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독도 문제다…. 문제 해결을 위해 그 섬을 폭파해 없애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박정희가 한·일수교에 걸림돌이 되는 독도를 지도상에서 영원히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을 품은 적이 있고, 이런 마음을 미국 쪽에 내비쳤다는 사실은 독도 문제에 박정희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사정을 보여준다. ‘독도 폭파’ 방안은 62년 한·일수교회담이 시작된 뒤 일본 쪽에서 먼저 제안했던 것이고,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도 이케다 일본 총리를 만나 똑같은 얘기를 했다는 사실에서 박정희의 마음과 언급이 홧김에 한번 품어보거나 내뱉어본 수준을 넘어서고 있음이 뒷받침된다.

이 땅에서 누군가 “차라리 독도를 폭파해버리고 싶다”고 말한다면 한승조 명예교수보다 훨씬 더한 고초를 겪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한 사람이 술주정뱅이가 아닌 박정희였고, 그 말을 한 곳이 술자리도 아닌 외교석상이었다.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는 일본 패망과 함께 사라진 게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박정희 안에 살아 있었고, 박정희 한 사람이 아니라 그를 정점으로 한 권력집단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독도와 박정희가 행복하게 공존할 수 없는 사정이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닐까. 독도냐, 아니면 박정희냐.

지금은 “죽지 마라, 자해하지 마라”고 말리고 다독거려야 할 때

▲ 지난 15일 오전 일본대사관 앞에서 할복을 시도하는 홍정식 활빈단 대표. 이정아 기자
‘엽기·잔혹’에 대한 한겨레의 이중적 태도를 해명할 차례다. 기사에 붙은 댓글을 읽고, 91년 이른바 ‘자살 정국’이 떠올랐다. 그리고 17일 오전 한 이름 없는 60대 베트남 참전 군인이 “독도 0.00001%도 내줄 수 없다”며 한강으로 뛰어내려 숨졌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1905년 을사늑약을 개탄하며 자결한 민영환이 떠올랐다. 머리속이 뒤얽혔다. 실마리를 찾아나섰다. 그들의 죽음은 자신의 존재를 모두 내던졌다는 데서 하나다. 하지만 같은 것 못지 않게 다른 것도 많다.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개별적 절박함은 ‘극한’으로써 같다. 하지만 시대와 상황의 절박함은 같지 않다. 의사표현의 한 수단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언로가 막혀 있느냐 열려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결의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동시대 사회가 그 결의와 신념에 동의하느냐 배척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지금은 어느 시대고 어떤 상황인가. 독도를 지켜야 한다는 결의와 신념은 일부의 것이 아닌 온 국민의 것이며, 수많은 언론은 모자람이 없이 전하고 퍼뜨리고 있다.

시대와 상황의 절박함이 다르면 죽음에 대한 사회의 태도도 달라야 한다. 지금은 죽어서는 안 된다고, 자해해서는 안 된다고 사회가 나서서 말리고 다독여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일본이 무력을 사용해 독도를 점령한 상황이라면 죽음에 대한 사회의 태도가 어때야 할지 좀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좌든 우든, 아니면 민주화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나라 지키기운동이든, 자신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방식은 비판받고 있다.

더구나 문제의 글에서 지적한 사례는 숭고함이나 숙연함보다는 혐오감을 주는 자해퍼포먼스에 가깝다. 지난 15일 한 단체 대표라는 이가 할복을 시도하는 장면의 사진에서 그의 배 부분이 유난히 불룩한 걸 보면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그는 이날 과도로 몇차례 자신의 배를 찔렀으나 겉옷으로 입고 있던 반팔 티셔츠에 작은 구멍 몇개만 났을 뿐 몸엔 아무 상처도 나지 않았다. 웃통을 벗고 무리지어 거리에 서 있는 어느 부대 옛 전우들의 모습을 담은 다른 사진에선 철거민촌에 나타난 어깨들의 모습이 어쩔 수 없이 겹친다. 그러니 제발 그런 집회는 하지 않으시면 좋겠다. 역효과가 너무 크다.

반크와 태극기몹, 불매운동…진짜 일본이 두려워할 방법은?

▲ 14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사단법인 국학원 회원들이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의도에 항의하기 위해 `고구려지킴이 광개토대왕 프로젝트' 중 한-중 모의전투를 벌이고 있다.(서울=연합뉴스)

지금 인터넷에는 일본의 음모를 물리치려는 온갖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중에는 카타르시스 한 번 느끼고 말아도 좋은 패러디 수준의 것들도 있고 실현 가능성과 효과가 기대되는 참신한 것들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일본 극우파들의 섬뜩한 행태를 닮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들이 갖고 있지 못하고 절대 따라올 수도 없는 것을 우리는 아주 많이 갖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 퍼지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자살이나 자해보다 실천하기 쉽지만, 일본이 더 두려워하는 대응수단이 될 수 있다. ‘사이버 외교관’을 자처하는 ‘반크’(www.prkorea.com)는 독도 문제를 풀려면 국제적으로 ‘동해’를 압도하고 있는 ‘일본해’를 다시 ‘동해’로 돌려놓은 게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올해 3·1절 서울 명동에서는 인터넷 카페 ‘고구려 지킴이’(cafe.daum.net/Goguryeoguard)’ 회원들이 ‘태극기몹’이라는 발랄한 3·1절 퍼포먼스로 거리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한겨레21> ‘폐인들의 가출’ 기사 보기

여러해 독도운동만 꾸준히 해오고 있는 한 인사는 “몇해 전 독도 관련단체를 몽땅 조사한 적이 있는데 이름만 있고 실제 독도 관련 일을 하는 곳은 몇곳 되지 않았다. 사정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고 귀띔했다. 소박한 애정과 사랑만 있지 독도를 영토 문제로 바라보고 연구하는 곳은 찾아볼 수 없더라는 얘기다. 그는 “지금 언론은 일본대사관 앞 풍경을 용광로인 것마냥 비추고 있지만 현실은 용광로가 아니라 잡탕”이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이 글을 쓰는 기자를 비롯해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독도는 일본이 없으면 우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 섬이 아닐까. 우리는 흥분하고 자해하기에 앞서 우리와 독도의 관계를 바로잡는 일부터 서둘러야 하는지도 모른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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