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극복 열쇠는 민주주의 확장이다
대안이 없다고들 한다. 진보·개혁 세력이 창조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한국 사회는 보수화 격랑에 휩쓸려들고 말 거라는 진단도 속출한다. 한국 민주화세력이 지난 10여년간 민주주의를 내실화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 가치에 압도당한 결과, 오늘날 보수주의 득세 위협에 직면했다는 진단이다. 중산층의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가난한 자를 더욱 가난하게 하는 양극화 흐름을 막고, 민주주의를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분야로 확장해 분배와 성장의 대립을 극복하는 것은 시대가 요청하는 과제다. <한겨레>는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진보·개혁 성향 학계에서 연구되는 ‘사회대안 모형’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대안적 담론의 대다수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물이며, 아직 실천적 검증을 거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한계가 있다. 이번 기획은 대안 담론을 압축해 소개하는 동시에, 부족한 점도 비판적 논평을 통해 전하고자 한다. ‘진보개혁 사회대안 탐구’ 시리즈를 계기로 좀더 폭넓은 사회적 토론을 기대한다.
[사회개혁 위기] 대안모델을 찾는다
①생태·평화 사회민주주의 국가론
②노동 중심 통일 경제연방론
③사회투자국가론
④사회연대국가론
⑤신진보주의 국가론
성장주의에 빠진 서구 사민주의 한계 극복
차베스식 ‘진보적 민중주의’ 서 동력 찾아야 “민주적이고 투명한 계급사회가 출현했다.” 지난해 말 출간된 <민주화·세계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대안체제 모형을 찾아서>(함께하는책)에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역설적인 현실을 이렇게 요약했다. 이런 역설이 발생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그는 민주화와 세계화의 동시 진행을 들었다. 그에 따르면 민주화가 진전된 지난 10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파괴적 수준으로 한국 사회를 습격했다. 지난 시대 한국 경제를 책임지던 박정희식 개발독재는 민주화의 영향으로 무너졌지만, 신자유주의에 강타당한 한국 사회는 새로운 국가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뚜렷한 항해도도 없이 한국호는 신자유주의 물결로 넘실대는 바다 위를 표류한다는 게 조 교수의 분석이다. 조 교수와 동료 연구자들이 보기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국민국가의 자기 조정 기능을 심대하게 위협하는 악조건이다. 이 악조건 위에서 민주진보세력은 민주주의, 분배, 인간다운 삶이라는 자신들의 기본가치를 실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조 교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조건 때문에 대안적 국가 모델은 필연적으로 일국적 차원을 넘어선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제하고 규율하려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대안을 탐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조 교수와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 등이 제출한 ‘생태·평화 사회민주주의 국가론’은 이런 지구적 차원의 조건을 일차로 염두에 두고 있다. 어떤 대안도 일국적 수준을 넘어 국제적 전망을 보여주지 않는 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국제적 변화만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다. 전 지구적 조건이 열악하면 열악한 대로 일국적 전망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의 대안은 국제적 전망과 일국적 전망을 동시에 고려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조 교수가 말하는 ‘생태·평화 사회민주주의 국가론’의 첫번째 강조점은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에 놓여 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사회민주주의는 20세기 서유럽의 사민주의보다 폭이 넓다. 20세기 사민주의는 국가주의와 성장주의의 한계에 갇혀 결국 좌초하고 말았다고 조 교수는 평가한다. 새로운 사민주의는 19세기 사민주의 이념의 급진적 변혁 전망을 내장한 채로 20세기 사민주의를 성찰·극복한 좀더 이상적인 사민주의다. 이 사민주의의 내용을 규정하는 것이 생태주의와 평화주의다. 개발과 성장에 매몰되지 않고 생태와 환경의 가치를 끌어안으며, 군사주의와 팽창주의와 단절하고 반전·평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확장을 통해 시장을 규율하고 민주화해야 한다. 시장을 민주화함으로써 양극화를 극복한 ‘사회적 완충국가’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사민주의적 대안을 동아시아 차원으로 확장해 구현해야 함도 이들은 강조한다. 일국적 수준의 실현이 단기 과제라면, 국제적 실현은 장기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대안적 체제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조 교수는 ‘진보적 민중주의’에서 동력을 찾는다. “남미의 차베스 정권에서 볼 수 있듯이 대중을 급진화시키는 운동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서구의 복지국가보다 더 평등하고 더 민주적인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한계와 보완할 점]
빈곤 · 양극화 해법 ‘생태’와 연결
기대치 높아…분배 연구도 부족 조희연 교수팀이 내놓은 ‘생태·평화 사회민주주의 국가론’은 구체성 부족이 약점으로 꼽힌다. 조 교수는 영국 노동당의 사민주의를 서구 사민주의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제시하는데, 이 점과 관련해서는 영국 노동당사를 전공한 고세훈 고려대 교수(정치학)가 매서운 반론을 제기했다. 고 교수는 “서구 사민주의의 핵심 가치는 사회경제적 분배에 있다”며 “우리는 그쪽 사회가 이룬 성과에 전혀 도달하지도 못했는데 그걸 극복하자고 말하는 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빈곤이나 양극화를 극복하는 문제를 생태와 연결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생태에 주안점을 두게 되면 빈곤 극복이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분배 문제라는 본질적 논점을 흐려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계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는 조 교수팀의 대안에 경제 부문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생략돼 있다는 것을 약점으로 들었다. 경제적 차원에서 노동문제라든가 산업문제 등 구체적인 이슈들을 해결할 방안이 제시돼야 하는데 그 문제를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 교수의 사민주의 담론이 추상적이라는 이야기다. 이 교수는 또 고세훈 교수와 달리 생태와 평화의 가치를 사민주의와 결합시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그 과제를 동시에 실현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조 교수의 제안에는 그 과제를 실현하는 방법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조 교수가 새로운 사민주의 대안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내놓은 ‘진보적 민중주의’가 ‘민중독재’를 불러올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조 교수 자신도 그런 약점을 인정하면서 “그 위험을 극복하는 것이 또 다른 과제”라고 말했다.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①생태·평화 사회민주주의 국가론
②노동 중심 통일 경제연방론
③사회투자국가론
④사회연대국가론
⑤신진보주의 국가론
왼쪽부터 조희연 신영복 조현연
성장주의에 빠진 서구 사민주의 한계 극복
차베스식 ‘진보적 민중주의’ 서 동력 찾아야 “민주적이고 투명한 계급사회가 출현했다.” 지난해 말 출간된 <민주화·세계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대안체제 모형을 찾아서>(함께하는책)에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역설적인 현실을 이렇게 요약했다. 이런 역설이 발생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그는 민주화와 세계화의 동시 진행을 들었다. 그에 따르면 민주화가 진전된 지난 10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파괴적 수준으로 한국 사회를 습격했다. 지난 시대 한국 경제를 책임지던 박정희식 개발독재는 민주화의 영향으로 무너졌지만, 신자유주의에 강타당한 한국 사회는 새로운 국가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뚜렷한 항해도도 없이 한국호는 신자유주의 물결로 넘실대는 바다 위를 표류한다는 게 조 교수의 분석이다. 조 교수와 동료 연구자들이 보기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국민국가의 자기 조정 기능을 심대하게 위협하는 악조건이다. 이 악조건 위에서 민주진보세력은 민주주의, 분배, 인간다운 삶이라는 자신들의 기본가치를 실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조 교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조건 때문에 대안적 국가 모델은 필연적으로 일국적 차원을 넘어선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제하고 규율하려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대안을 탐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조 교수와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 등이 제출한 ‘생태·평화 사회민주주의 국가론’은 이런 지구적 차원의 조건을 일차로 염두에 두고 있다. 어떤 대안도 일국적 수준을 넘어 국제적 전망을 보여주지 않는 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국제적 변화만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다. 전 지구적 조건이 열악하면 열악한 대로 일국적 전망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의 대안은 국제적 전망과 일국적 전망을 동시에 고려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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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와 보완할 점]
빈곤 · 양극화 해법 ‘생태’와 연결
기대치 높아…분배 연구도 부족 조희연 교수팀이 내놓은 ‘생태·평화 사회민주주의 국가론’은 구체성 부족이 약점으로 꼽힌다. 조 교수는 영국 노동당의 사민주의를 서구 사민주의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제시하는데, 이 점과 관련해서는 영국 노동당사를 전공한 고세훈 고려대 교수(정치학)가 매서운 반론을 제기했다. 고 교수는 “서구 사민주의의 핵심 가치는 사회경제적 분배에 있다”며 “우리는 그쪽 사회가 이룬 성과에 전혀 도달하지도 못했는데 그걸 극복하자고 말하는 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빈곤이나 양극화를 극복하는 문제를 생태와 연결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생태에 주안점을 두게 되면 빈곤 극복이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분배 문제라는 본질적 논점을 흐려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계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는 조 교수팀의 대안에 경제 부문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생략돼 있다는 것을 약점으로 들었다. 경제적 차원에서 노동문제라든가 산업문제 등 구체적인 이슈들을 해결할 방안이 제시돼야 하는데 그 문제를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 교수의 사민주의 담론이 추상적이라는 이야기다. 이 교수는 또 고세훈 교수와 달리 생태와 평화의 가치를 사민주의와 결합시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그 과제를 동시에 실현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조 교수의 제안에는 그 과제를 실현하는 방법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조 교수가 새로운 사민주의 대안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내놓은 ‘진보적 민중주의’가 ‘민중독재’를 불러올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조 교수 자신도 그런 약점을 인정하면서 “그 위험을 극복하는 것이 또 다른 과제”라고 말했다.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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