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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기합날이 너무 싫어…죄송해요 아빠”

등록 2007-03-12 07:34수정 2007-03-12 14:11

전북대 체육교육과 등록 포기한 수석 합격생 이메일
“제가 생각한 것과 달라요” 교수 아버지에 하소연
지난 2월 말.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서 지내던 배경식 한일장신대 교수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식을 접했다. 올해 대학 새내기를 꿈꾸던 딸이 갑자기 입학등록을 포기한다는 얘기였다. 1월 초, 전북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수석으로 합격해 기뻐하던 그 막내딸이 아니었다. “운동을 좋아해서 체육과 관련된 일을 하려 했던” 딸이었다. “아빠의 모교라는 이유로 더욱 좋아했었는데 ….”

배 교수는 “너희들을 사랑하는 선배라고 생각해라”며 딸을 달랬다. “거기서 적응 못하면 낙오자가 된다”고 다그쳐도 보았다. 동료 교수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청하기도 했으나, 상처를 받은 딸의 마음은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져 있었다.

개강에 맞춰 돌아왔을 때 딸의 얼굴에선 웃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지금도 “딸아이완 더 이상 학교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던 딸은 이제야 겨우 마음을 잡고 재수학원에 다니는 중이다. “오랫 동안 품었던 꿈을 접어버린 격이죠. 그런데도 (딸은) 오히려 해방감을 느껴요. 그래서 더욱 안쓰럽기도 하고 ….”

배 교수는 자신을 “교수 죄인”이라고 했다. “십수년간 학생들을 가르쳐 온 내가, 정작 내 아이의 아픔도 치유하지 못하는 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미국에 있던 아버지와 딸이 대학 입학을 앞두고 이메일로 주고받은 내용을 요약해 정리했다.

“아빠. 저 ○○에요. 22~24일 오티(오리엔테이션)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그런데요, 체육교육과가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른 것 같아요.

3월 한달간은 대면식 준비로 새벽에 집합해서 매일 훈련받아야 한대요. 머리도 자유롭게 할 수가 없어요. 오늘 파마를 했는데, 입학식 때까지 단정하게 하라고 했어요. 학과 건물 안에선 가방을 오른손으로만 들어야 하고, 전화받을 때도 “안녕하십니까? 07학번 ○○○입니다” 이래야 한대요. “~다, ~까”로 말을 끝내야 하고요. 제가 원하던,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마음껏 도서관에서 책도 읽을 수 있는 그런 여건이 안 되어 있어요.


그래서 … 포기하려 해요.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려고요. 체육교육과에서는 단 하루도 단 한순간도 버틸 수가 없을 거 같아서요. 엄마는 “여기서 그만두면 넌 고졸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우리 형편에 무작정 니가 원하는 대로 할 수도 없는 여건이라고 하셨지만, 당장 있을 기합날이 다가오는 게 너무 싫어요. 등록포기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아빠 안 계실 때 이런 결정을 하게 됐어요. 아빠, 저를 이해해주세요. 지금 너무 힘들어요. 제가 원하는 것처럼 공부할 수 없고, 반쯤 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그런 과여서 도저히 입학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 아빠 ….”

“○○아. 학과장을, 교수님을 만나라. 아빠 대신 상담을 해 줄 것이다. 아빠는 정말 재수를 원치 않는다. 처음에 그렇게 겁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정도를 이겨내야 기강도 생기고 신입생 기간만 지내면 된다. 막순아 제발 약한 생각 말아라. 네 눈에서 눈물이 나와야 진짜 대학생활이고 네가 강해지는 법이다. 왜 그렇게 약하게 생각하니. 너희들을 사랑하는 훌륭한 선배들이라고 생각해라. 알겠니? 나에게도 그런 선배들이 있다면 좋겠다. 제발 약하게 마음을 먹지 마라.

제발 부탁이다. 포기하면 안된다. 학과장과 선배들에게 말을 해서 너의 고민을 잘 이야기해라. 거긴 신학대학이나 교회가 아니다. 그곳은 작은 사회다. 거기에서 적응 못하면 절대 안된다. 알겠니? 휴학은 아직도 시간이 있다. 아빠가.”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 ‘대학교 폭력’ 피해학생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한겨레>는 2006년 3월에도 [기획연재] 폭력에 길들여진 대학사회 이대로 좋은가’ 기사를 실어 대학교 신입생 폭력을 고발했지만, 1년이 지난 2007년에도 대학내 가혹행위가 여전함을 보도하게 되었습니다. <한겨레>는 이에 피해자와 목격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대학생활중 조직적인 가혹행위를 받은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래 이메일로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철저한 제보자의 안전보장과 충실한 취재를 약속드리며 지성사회의 폭력 근절에 함께 참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보할 곳 : <한겨레>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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