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인 피터 바솔로뮤(맨 왼쪽)씨가 지난 10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자택 한옥에서 한옥을 지키려는 인근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나운규 영화 <아리랑> 기념 영화거리 길목
재개발이 추진되던 지역에서, 주민 다수가 ‘한옥 보존’을 요구해 재개발 방침이 보류됐다.
서울 성북구청은 최근 성북구 동소문동6가 우전골목 일대 주택재개발 정비구역 지정절차 진행을 보류했다. 지난 1월19일~2월2일 이뤄진 주민공람 과정에서 토지 등 소유자 208명의 52%인 109명이 재개발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기 때문이다. 애초 주민들은 2005년 11월 주민 54%의 찬성으로 재개발조합 설립추진위를 만들었으나, 1년여 만에 한옥을 보존하는 등 지역 특성을 살려야 한다는 쪽으로 다수 의견이 바뀌었다.
이 지역은 서울의 대표적 한옥 지구 가운데 하나인 옛 돈암동의 일부로 서울 종로구 북촌처럼 1920~1930년대 지어진 한옥이 집중된 곳이다. 과거엔 이 지역 전체가 한옥이었고, 현재도 이 지역 토지 등 소유자 208명 가운데 43명의 집이 한옥이다.
이번 보류 결정에 따라, 재개발 반대 쪽 주민들은 이 지역을 한옥 보존 지구로 지정하거나 영화·대학의 거리로 발전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지역은 1995년 서울시가 춘사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을 기념하고자 ‘영화 거리’로 지정한 ‘아리랑 고갯길’이 지나는 곳이다. 또 2005년 ‘한옥 보존의 해’엔 한옥 연구 대상지로 선정됐으며, 주변에 성신여대·한성대·고려대·성균관대·국민대 등 대학 7곳이 몰려 있다.
재개발 추진 반대 주민모임 대표인 이병구(71)씨는 12일 “지역의 특성인 한옥과 영화 거리를 살리면서도 재산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데 다수 주민들이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 지역 주민이면서 한옥 지킴이로 널리 알려진 미국인 피터 바솔로뮤도 “누구나 자신의 집과 땅에 대한 꿈과 계획이 있는데, 무조건 한 지역 전체를 고층 아파트로 바꿔야 한다는 발상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역 특성을 살리려는 주민들의 희망이 실현될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홍학연 재개발추진위원장은 “성북구의 주민공람 때 재개발에 반대한 주민 중 20여명을 다시 찬성으로 돌려놓았다”며 “찬성 주민이 50%를 넘어 다시 재개발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중겸 성북구 도시개발과장은 “재개발추진위의 공문이 접수돼 구 의회에서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석 경원대 교수는 “원하는 주민들끼리 재개발을 추진하면 되는데, 고층 아파트를 원하지 않는 주민들의 집까지 무리하게 재개발 구역에 포함시켜 문제가 생긴다”며 “법·제도 개선을 통해 주택 소유자가 자신이 원하는 집에서 살 수 있는 상식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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