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장영철씨
북한학 전공하는 탈북자 장영철씨
89년 동독 유학 중 망명…공부욕심 불태워
남북 갈등 해소에 보탬 되고파 북한학 선택
강화도 찾아 연백땅 보며 망향 설움 달래 장영철(41)씨의 남한살이는 올해로 벌써 19년째다. 그는 옛 동독에 유학 중이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다음날 동료인 전철우씨 등과 함께 남한 재외공관을 찾아 망명을 요청했다. 이듬해 옛 소련에 있던 유학생 두명이 또 남한행을 택하자, 북한 당국은 당시 외국에 나가 있던 유학생들에게 전원 철수령을 내렸다. 남한 생활이 몸에 익은 지 오래됐어도 장씨에게는 두고 온 고향이자 또 하나의 고향인 북한은 늘 마음의 짐이다. 통일이나 완전한 남북 교류가 됐을 때 북한 주민들이 남쪽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1997년 <당신들은 그렇게 잘났어요?>라는 다소 도발적인 책을 써서 북쪽 주민들을 보는 남쪽 사람들의 이런 태도를 꼬집기도 했지만, 그가 보기에 사정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불혹의 나이에 북한을 학문적으로 본격적으로 연구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그는 이번 학기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북한·통일정책학과에 입학해 주경야독을 시작했다. “북한이 급변할 가능성이 없다고들 얘기하는데 저는 북한에 변화가 오면 점진적이 아니라 아주 극단적으로 올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뜻대로 북한이 연착륙하면 좋겠지만 예기치 못한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상되는 남북 갈등을 해소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좋겠어요.” 사실 그는 공부 욕심이 많다. 북한 김책공대와 동독 프라이부르크 광산대학에서는 지질학을 공부했다. 남한에서는 서강대 전자계산학과에서 전자공학을 배운 뒤 곧이어 신문방송학과에 편입해 학업을 마쳤다. 또 “남북한과 유럽을 오가는 굴곡많은 인생에서 켜켜이 쌓인 얘기를 책에 담아보려고” 몇년 전 서울의 한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적응 점수는 그다지 우수하지 않다. 1997년 아엠에프(IMF) 위기 직전 ‘그 좋은’ <포항제철>을 그만두고 친구인 전씨와 경기도 일산에 냉면집을 열었다가 얼마 못 버티고 망하고 말았다. 빚을 진 채 책을 쓰겠다며 제주도 월세방을 전전하기도 했다. 지금은 작지만 소중한 직장에다 가족도 꾸려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다. 요즈음 그의 낙은 강화도를 가끔 찾는 일이다. 바닷가에서 고향인 황해남도 연백 땅을 바라보면서 망향의 그리움을 달랜다. “부모님이 제일 보고 싶어요. 우리 같은 사람도 고향을 왕래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글·사진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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