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판례에 어긋나”
법원이 공소장에 검사의 자필 서명이 빠졌다는 이유로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의 공소를 기각한 것에 대해, 검찰이 대법원 판례를 내세워 이를 반박하고 나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민병훈)는 지난달 29일 “검사의 서명이 빠진 공소장은 효력이 없기 때문에 애초 공소제기가 없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며 윤 아무개씨(54)의 공소를 기각했다. 공소 기각이란 형사소송 절차의 잘못을 이유로 실제 심리를 하지 않고 재판을 종결하는 것이다. 재판부는 “공소제기가 형사소송 절차에서 가지는 의의를 고려하면, 검사의 서명에 의해서만 공소제기가 해당 검사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이 확인·담보되고 다른 방법에 의한 증명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시 검찰은 서명을 빠뜨린 실수는 인정하면서도 “지난해 7월 재판이 시작되자 재판장이 서명을 추가하도록 한 뒤 8개월 동안 재판을 진행해 오다가 새로 바뀐 재판장이 갑자기 공소를 기각했다”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공소장 없이 공소가 제기된 경우에도 나중에 공소장이 제출돼 실제 심리가 이뤄졌다면 공소를 기각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2003도2735)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03년 대법원(주심 변재승 전 대법관)은 김아무개(37)씨의 도로교통법 위반 사건에서 “공소장을 제출하지 않은 공소제기는 무효지만, 추후 공소장이 제출된 뒤 실제 심리가 이뤄졌다면 그때부터는 소송행위가 성립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공소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했다.
검찰은 “심리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애초 공소장에 검사의 도장만 찍혀 있을 뿐 서명이 없다’는 이유로 공소를 기각한 것은 대법원 판례에도 어긋난다”며 “이 판례를 근거로 항소이유서를 작성해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소장이 없는 경우와 서명이 빠진 경우는 사안이 다르다”며 “판결문에 판사의 서명·날인이 없다는 이유로 재판을 다시 하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도 있다”고 반박했다.
하태훈 고려대 교수(법학)는 “형사소송법은 피고인과 죄명, 공소 사실, 적용 법조를 공소장에 기재될 본질적 요소로 규정하고 있다”며 “따라서 검사의 서명은 재판 과정에서 보완이 가능하고, 피고인의 인권과도 무관한 것이어서 공소를 기각한 것은 이해가 안 간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형사소송법에 판결문에는 반드시 판사의 서명과 날인이 필요하다고 돼 있지만, 공소장은 그렇지 않아 판결문과 공소장의 요건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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