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 때 부상당한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재입국과 치료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자 법무부 직원이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다. 인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여수엑스포 실사단 방문 중국총리 방한때 문제될라
‘국익’ 떠밀려 강제출국…배웅하는 이 아무도 없어
‘국익’ 떠밀려 강제출국…배웅하는 이 아무도 없어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의 불길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11일 오후 한국을 떠났다. 새벽 불길에 놀라 깬 지 꼭 두달 만이다. 이날 떠나는 부상자와 그 가족 32명에게 손을 흔들어 배웅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사고가 터졌을 때 구름처럼 여수로 몰렸던 취재진도 보이지 않았다. 이들에게 남은 건 화상으로 인한 물집들과 국가배상금 1천만원이 거의 전부였다. 그리고 상처. “악몽에 시달리고 손이 계속 떨리고 두통과 어지럼증이 심하지만 꼭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요.” 중국 출신 동포 박철용(32)씨의 말이다. 고향인 중국 지린성에 가 결혼식을 올리는 대로 다시 돈을 벌러 오겠다고 한다. 하지만 박씨의 눈은 참사 당시 그가 보았던 불길만큼이나 붉게 충혈돼 있었다. 그는 말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기억 때문에 요즘도 하루 1~2시간밖에 잠을 못 자요.” 이처럼 많은 이들이 공포와 긴장이 반복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을 호소했지만, 법무부는 정신과 진료를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법무부의 주장은 일관된 것이었다. ‘일단 나가라.’ 정부는 국가적인 큰 행사를 앞두고 여수 참사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개최 여부를 결정할 국제박람회사무국(BIE) 실사단이 지난 9일 입국했고 10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도 방한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법무부의 한 간부는 “여수세계박람회와 원자바오 총리의 방한이라는 국익이 걸린 사안이 있어 이들을 출국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주노동자들의 법무부에 대한 불신은 뿌리깊다. 이날도 이들은 1시간30분 가량을 공항 출국장 바닥에 앉아 “재입국과 치료를 확실히 보장한다는 확인서를 써달라”며 농성을 벌였다. “양쪽이 맺은 양해각서(<한겨레> 4월9일치 8면)만으로는 치료를 위한 재입국이 보장되지 않는다”(김해성 외국인노동자의 집 대표)는 우려 탓이다. 당황한 법무부는 실랑이 끝에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주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는 곁에서 법무부의 한 직원은 “교통사고도 합의금 주면 다 끝나는데 배상금까지 받고 저러면 되느냐”는 말로 법무부의 인식을 드러냈다. 부상자와 가족들이 한국을 떠나는 사이 여수세계박람회 실사단은 여수를 향했다. 2만여명의 시민들이 나와 이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실사단은 여수 참사 부상자들과 맞닥뜨리지 않을 수 있었다. 법무부가 이날 새벽 이들을 호송차량에 태워 여수를 떠났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도 이들을 배웅하는 한국인은 아무도 없었다. 인천/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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