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안과병동에서 세브란스병원이 개원 120돌을 맞아 120명의 눈질환 환자들에게 무료로 개안수술을 하기로 해, 첫번째 대상인 손봉금씨의 눈을 김응권 교수가 살펴보고 있다. 이종근 기자
세브란스 120돌 ‘무료 개안수술’ 1호 손봉금씨 수술비 120만원 감당하기 힘겨워… “아이들과 손잡고 부산 바닷가를 걷고 싶습니다.” 검은 안경 뒤로 얼굴을 가린 손봉금(48·여)씨가 처음으로 엷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부산, 그 앞바다와 아이들의 얼굴을 눈에 담아 본 지 너무 오래된 탓이다. 22일 오전 서울 세브란스병원 안과병동에는 하루 뒤면 ‘눈부신 아침’을 맞을 손씨와 그의 두 자녀가 서로 손을 잡은 채 앉아 있었다. 보이지 않기에 그만큼 더 꼭 잡았던 손이다. 희귀병 ‘각막 이영양증’ 눈동자 각막에 흰 반점이 생겨 거의 앞을 못보게 된 엄마의 병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딸 지수(15·가명)와 아들 우원(14·가명)이는 나이답지 않게 두꺼운 렌즈의 안경을 쓴 채 쑥스러운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언뜻 보이는 아이들의 눈은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처럼 맑게 보였지만 이들이 보는 세상은 엄마처럼 뿌옇게 흐려 있을 터였다.
손씨가 시력을 잃기 시작한 것은 40여년 전 초등학교 때였다. 이유도 몰랐지만 고칠 방법도 몰랐다. 그나마 사물을 어렴풋이 구별할 수 있던 눈은 아이들을 낳은 뒤 급격히 나빠져 ‘밝음과 어둠의 경계’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 30여년 동안 살아온 동네는 말 그대로 ‘눈 감고도’ 다닐 정도로 익숙한 손씨였지만, 때로는 어제는 없던 도로턱에 걸려 넘어지고 갑자기 생긴 공사장 맨홀에 빠지는 위기를 수없이 넘겨야 했다. 그런 손씨에게도 아이들이 잡아 이끄는 작은 손을 따라 시장에 가는 일은 결코 뺏길 수 없는 일상의 기쁨이었다. 엄마를 닮은 탓일까. 한살 터울인 지수와 우원이의 눈마저 4년 전부터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바꾼 눈’이라 자위하며 살아온 손씨에게 병원은 검은 눈동자의 각막에 흰 반점이 생기는 ‘라이스-뷔클러 각막 이영양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자식에게 100% 유전되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희귀병이었다. 시장에 갈 때마다 자신의 손을 잡아주던 아이들이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공을 차고 만화책을 봐야 할 아이들이었다. 1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월 70여만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으며 월셋방에서 살아온 손씨에게는 한쪽 눈 수술에만 120만원이나 드는 수술비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의 눈은 갈수록 흐려져 갔다. 유전된 두 자녀도 수술대 그런 손씨 가족에게 희망의 빛이 찾아들었다. 세브란스병원이 개원 120돌을 맞아 시력을 잃은 120명에게 무료로 시력을 되찾아 주는 ‘개안수술’을 해주기로 한 것이다. 손씨 가족은 부산의 한 병원 의사의 소개로 그 첫번째 대상자가 됐다. 수술을 맡은 김응권 교수는 “아직까지 완전한 치료법은 나오지 않아 재발 가능성이 높지만 레이저 수술을 받으면 이들 가족의 맨눈 시력을 1.0 정도까지 올릴 수 있다”며 “23일 실시되는 레이저 수술은 1분 정도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손씨는 “1분이면 될 것을 수십년 동안 어둠 속에서 산 것도 모자라 자식들에게도 어둠을 물려줬다”며 몹쓸병을 자식들에게 넘겨준 어미의 몸을 탓하면서도, “아이들 졸업식에도 가보지 못해 미안했는데 시력을 되찾으면 시장에서 장을 봐 맛난 것을 해먹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내일은 영화를 좋아하는 지수에게도, 축구를 싫어한다는 우원이에게도 분명 새로운 하루가 될 것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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