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전개 과정
날짜 지정 앞두고 각계 견해차…새달 4번째 토론회
학계선 ‘무장 기포일’ 기념단체는 ‘고부 봉기일’ 주장
학계선 ‘무장 기포일’ 기념단체는 ‘고부 봉기일’ 주장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은 음력 3월20일?”
1894년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지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2004년 제정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기념일을 지정해야 하는데 각 지역·단체의 이해 관계와 연구자의 시각 차이로 대립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거론된 기념일은 음력으로 △1월10일(전북 정읍 고부봉기) △3월20일(고창 무장기포) △3월25일(부안 백산대회) △4월7일(정읍 황토현 전승) △4월27일(전주 입성) △11월8일(공주 우금티전투) 등이다. (지도 참조)
학계에서는 역사성, 상징성, 전국성 등을 내세워 무장기포일을 주로 인정하고 있으며, 고부봉기와 백산대회도 거론된다.
이이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은 “최초의 창의문(성명서)이 전국 곳곳에 반포되는 등 상징성이 커서, 학계의 80% 이상이 무장기포일을 기념일로 원하고 있다”며 “지역 이기주의를 벗어나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조광환 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은 “혁명 관련 사발통문 등에는 고부 봉기가 민란의 한계를 뛰어넘어 중앙권력 교체까지 언급하고, ‘고부기포’라는 표현이 나오며, 관군 출동이 ‘무장’이 아니라 ‘고부’인 점 등이 상징성을 드러낸다”며 “모두가 공감하는 토론회를 통해 기념일을 정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특별법 제정 이후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지정을 둘러싸고 지금까지 세차례 토론회가 열렸다. 다음달 10일 전북 정읍에서 네번째 토론회가 열린다. 혁명기념재단이 기념일 날짜를 결정해 정부에 제출하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심의위에서 기념일을 최종 확정한다.
고부봉기=고부군수 조병갑이 새로운 보를 만들어 수세를 거두는 등 불법적으로 농민을 수탈했다. 농민들은 수세를 줄여달라고 진정했으나 수탈이 그치지 않자, 전봉준 등 20명의 동학교도가 모여 ‘군수살해, 전주감영 점령, 서울진격’ 등 내용이 담긴 사발통문을 만들고 고부관아를 습격했다.
무장기포=고부봉기에서 실패한 전봉준은 3월 무장에서 손화중 등과 연합해 동학농민혁명을 알리는 선언서를 곳곳에 뿌렸다. 이 포고문 발표를 계기로 1년여에 걸친 혁명이 시작됐다. 학계는 무장의 봉기가 국지적 농민항쟁에서 전국적 농민전쟁으로 전환이고, 일제하 봉기의 효시라는 점을 들어 혁명을 대표하는 역사성·상징성이 있다고 말한다. 백산대회=전봉준 주도로 무장에서 봉기한 농민군은 백산대회를 통해 조직을 재정비하고, 반외세·반봉건의 강령을 제정했다. 이를 실질적인 혁명의 출발점으로 본다. 황토현전승=농민군은 정부군과 전투를 벌여 이날 최초로 정읍 황토현(덕천면)에서 승리했다. 현재 황토현에는 갑오동학혁명탑, 기념비, 조형물과 2004년 개관한 혁명기념관 등이 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기념 사업이 이뤄졌다. 우금티전투=농민자치기구인 집강소를 운영하던 동학농민군은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하자, 1894년 9월에 다시 기병했다. 남북이 연합한 농민군 부대는 공주 우금티에서 11월9일부터 11일에 걸쳐 최대의 격전을 벌였으나 패했다. 공주 우금티기념사업회는 외세와 봉건세력에 압살된 미완의 혁명, 전국적 참여 등을 내세워 이날을 기념일로 주장한다. 전주/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무장기포=고부봉기에서 실패한 전봉준은 3월 무장에서 손화중 등과 연합해 동학농민혁명을 알리는 선언서를 곳곳에 뿌렸다. 이 포고문 발표를 계기로 1년여에 걸친 혁명이 시작됐다. 학계는 무장의 봉기가 국지적 농민항쟁에서 전국적 농민전쟁으로 전환이고, 일제하 봉기의 효시라는 점을 들어 혁명을 대표하는 역사성·상징성이 있다고 말한다. 백산대회=전봉준 주도로 무장에서 봉기한 농민군은 백산대회를 통해 조직을 재정비하고, 반외세·반봉건의 강령을 제정했다. 이를 실질적인 혁명의 출발점으로 본다. 황토현전승=농민군은 정부군과 전투를 벌여 이날 최초로 정읍 황토현(덕천면)에서 승리했다. 현재 황토현에는 갑오동학혁명탑, 기념비, 조형물과 2004년 개관한 혁명기념관 등이 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기념 사업이 이뤄졌다. 우금티전투=농민자치기구인 집강소를 운영하던 동학농민군은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하자, 1894년 9월에 다시 기병했다. 남북이 연합한 농민군 부대는 공주 우금티에서 11월9일부터 11일에 걸쳐 최대의 격전을 벌였으나 패했다. 공주 우금티기념사업회는 외세와 봉건세력에 압살된 미완의 혁명, 전국적 참여 등을 내세워 이날을 기념일로 주장한다. 전주/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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