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금과 뇌물의 법적 경계
이익단체 등으로부터 ‘뒷돈’을 받은 정치인들은 말썽이 나면 정치후원금이라고 발뺌하지만, 검찰은 정상적으로 영수증 처리한 후원금일지라도 직무와 관련된 청탁과 함께 받았을 땐 뇌물죄로 기소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주선 전 민주당 의원 사건이다. 검찰은 숨진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되는 것을 막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현대로부터 영수증 처리된 후원금 3천만원을 받은 박주선 전 민주당 의원에게 뇌물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대법원은 2005년 2월 원심을 깨고 박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뇌물죄로 기소한 것이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대가성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취지였다.
대법원은 직무와 관련됐다는 사실이 포괄적으로 인정되면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법원은 1997년 4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정축재 사건 상고심에서 “뇌물은 개개의 직무행위와 대가적인 관계에 있을 필요가 없으며 그 직무행위가 특정될 필요도 없다. 정치자금이나 선거자금, 성금 등의 명목으로 이뤄진 금품수수라고 하더라도 정치인인 공무원의 직무행위에 대해 실질적인 대가의 성격을 가진다면 뇌물의 성격을 잃지 않는다”며 처음으로 ‘포괄적 뇌물죄’를 인정했고, 이후 같은 취지의 판결이 잇따랐다.
결국 후원금과 뇌물을 가르는 기준은 실질적인 대가의 성격을 가지는지다. 그러나 돈을 받은 사람을 물론, 건넨 사람도 “청탁을 했다”는 진술을 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실제 수사에서는 어려움이 있다. 특별수사를 오래 한 한 부장검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경우처럼 의사협회로부터 1천만원을 받은 정형근 의원에게도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하려면 대가성을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변호사는 “의협 회장이 정 의원에게 준 돈과 관련해 ‘연말정산 대체법안을 만들기 위해 의원 섭외를 하는데 정 의원이 ‘고려해보겠다’며 긍정적으로 말해 후원했다’고 말한대로 검찰에서도 진술하면 대가성이 입증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