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가정방문의 ‘힘’

등록 2005-03-23 18:52수정 2005-03-23 18:52

 서울공고 김진우(왼쪽) 교사가 지난 21일 오후 수업을 마친 뒤 관악구 봉천동의 한 학생 집을 방문해 학부모와 상담을 벌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 <a href=mailto:chang@hani.co.kr>chang@hani.co.kr</a>
서울공고 김진우(왼쪽) 교사가 지난 21일 오후 수업을 마친 뒤 관악구 봉천동의 한 학생 집을 방문해 학부모와 상담을 벌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서울공고 김진우 교사의 가정방문기

“가정형편이나 학교생활 면에서 문제가 없는 학생이라 큰 걱정은 없습니다.”

지난 21일 오후 6시 서울공고 1학년 설비공업과 ㄱ(16)군의 가정방문을 앞둔 담임 김진우 교사는 느긋했다. 학기 초 이뤄진 학생 상담 결과, ㄱ군은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가정에서 부모·형제와 함께 살고 있었고, 학교에서도 모범생이었기 때문이다.

‘노는’아이인줄 알았는데 “집에선 자상한 형”
모범생 집안은 “전세금 떼일 처지”걱정
놀라고…안도하고… “아이들 이해하게 됐어요”


하지만 막상 ㄱ군의 집을 방문해 학부모를 만나보니 상황은 전혀 달랐다. ㄱ군의 어머니 이아무개(62·관악구 봉천동)씨는 “전세금을 날리고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며 “아들이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속사정을 털어놨다. 집주인이 최근 부도를 낸 뒤 아내와 함께 동반자살을 했고, 은행에 저당잡혀 있던 집은 경매로 넘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더구나 ㄱ군 부모는 ㄱ군의 고교 진학 문제로 전입신고를 늦추면서 전세 확정일자를 채권 은행보다 늦게 받았고, 그 바람에 전세금 보호도 받지 못할 처지였다.

김 교사는 “한달 건강보험료가 3만7천원 이하면 교내 장학금 신청이 가능하다”고 이씨를 안심시키며, 새삼 가정방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김 교사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과 중식지원 신청을 받았지만 ㄱ군은 신청하지 않았다”며 “사춘기 아이들은 가정형편을 솔직히 털어놓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가정방문을 통해 아이의 상황을 직접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걱정을 짊어지고 가정방문을 했다가 마음을 내려놓는 경우도 있었다. 김 교사는 평소 학교에서 지나치게 ‘잘 노는’ ㄴ(16)군을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정방문을 해보니, ㄴ군은 맞벌이 부모를 대신해 어린 동생을 보살피는 자상한 형이었고 늦게 귀가하는 부모를 위해 직접 이부자리까지 봐주는 든든한 아들이었다.

교육부는 1990년대 초반 일선 학교에 교사들의 가정방문을 자제시키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촌지나 접대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 교사가 속해 있는 ‘좋은 교사 운동’ 소속 교사 5천여명은 최근 반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가정방문을 시작했다. 학교폭력과 왕따, 결식 학생 등 학생들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하면서, 아이들 문제의 ‘근원’인 가정환경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좋은 교사 운동’ 교사들은 촌지에 대한 우려를 없애기 위해 가정방문에 앞서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학생에 대한 얘기를 최대한 정확히 듣기 위한 가정방문일 뿐이며, 촌지와 접대는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 때문인지 이날 김 교사가 방문한 학생 9명의 부모들은 간단한 음료수 정도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더러는 ‘냉수 한 잔’ 내놓지 않는 학부모들도 있었지만, 담임에게 아이 문제를 털어놓는 마음만큼은 한결같이 진지하고 절박했다.

ㄴ군의 어머니 최아무개(45·관악구 봉천11동)씨는 “혼자 바느질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느라 아이들 뒷바라지를 못해줬고, 그 바람에 아들이 욱하는 성격을 갖게 된 것 같다”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또 ㄷ(16)군의 어머니 한아무개(63)씨는 “공고에 보내기는 했지만, 대학에 진학시키고 싶다”며 특례입학 등 입시상담을 적극적으로 청해오기도 했다.

한씨는 “학교에 가서 하는 상담은 해봤지만 자리가 불편해 중요한 얘기들은 꺼내지도 못했다”며 “가정방문은 처음이지만, 선생님과 허심탄회하게 아이 문제를 상의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밤 11시까지 이어진 가정방문으로 파김치가 된 김 교사 역시 “몸은 힘들어도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흐뭇한 표정으로 이날 마지막 가정방문을 마쳤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