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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익단체 ‘눈먼’ 내부 감사, 로비 횡령 ‘눈먼 돈’ 낳아

등록 2007-05-01 22:34수정 2007-05-02 01:12

의협·언론노조 계기로 본 불투명한 재정 실태
“(올해 예산안 설명은) 자료로 갈음하고 바로 의결에 들어갑시다.”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 한국세무사회의 제 45차 정기총회가 한창 진행되던 즈음, 객석에서 의사진행 발언이 나왔다. “그럼 그리 하겠습니다. 이의 없으시죠?” 결국 예산안은 설명도 없이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예산이 84억원에서 91억원으로 늘고, 감사보고서는 다른 예산항목에서 업무추진비를 끌어다 쓴 일이나 사용 용도가 분명치 않은 무기명 선불카드(기프트 카드) 구입 문제를 지적했지만 회원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총회의 관심은 세무사들의 수입을 줄이는 ‘성실 납세제’ 입법을 막지 못한 데만 쏠렸다. 이런 풍경은 이익단체 총회장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의사협회 왜 그런가 했더니…

최근 대한의사협회 장동익 회장의 정치권 금품로비 및 횡령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익단체들의 재정 운영에 대한 눈먼 감사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실상 감시 사각지대에 있는 거대 이익단체들의 재정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의 대표적 이익단체인 전경련의 지난해 예산 규모는 376억원이었다. 대한의사협회의 올해 예산규모는 244억원, 한국노총은 140억원, 대한건설협회가 120억원이다. 한국세무사회(91억원), 대한전문건설협회(87억원), 한국경영자총협회(80억원)의 예산도 만만찮은 수준이다.

이들 단체 가운데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문건설협회 등 증빙자료 없는 예산 집행과 형식적 회계감사가 관행처럼 굳어진 곳이 적지 않다. 대부분의 이익단체 회원들도, 일반 기업들의 주주나 임직원과는 달리 소속 단체의 씀씀이에 무관심하다.

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는 “업계의 이익이 걸려 있는 입법과 관련한 이슈가 있으면 공공연하게 로비 명목으로 돈을 거두는 곳들도 있다”며 “그나마 감사를 별도로 선출하는 단체들은 좀 낫지만, 사실상 대표가 감사를 지명하는 곳들은 견제 기능이 대단히 취약할 수밖에 없어 불법자금이 조성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장동익 의협 회장의 정치권 로비 및 횡령 의혹과 지난해 대한전문건설협회 경기도회 박청방 도회장의 정치권 로비 및 횡령 비리 등 닮은꼴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 박 회장은 정치인들에게 금품 로비를 벌였다고 말한 녹취 자료가 폭로되면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장 의협 회장과 비슷하다. 두 협회 모두 판공비를 증빙 없이 쓸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문건설협회 경기도회의 경우, 판공비의 적용 범위를 ‘업무수행상 소요되는 비용으로 대외적으로 기밀을 요하는 성질의 경비’로 명시해 영수증 없는 지출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었다.

비슷한 부조리는 노동조합에서도 자주 벌어진다. 조합 간부가 지난 3년여 동안 3억여원을 횡령한 사실이 최근 드러난 언론노조의 경우 회계감시 기능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언론노조 한 관계자는 “1년치 회계장부에 대한 감사가 2시간 만에 뚝딱 이뤄져 왔다”며 “회계감사 선출 과정도 집행부가 추천하면 박수로 통과시키곤 했다”고 밝혔다.

외부감사 법적 강제가 ‘처방’

이런 점에서 일부 이익단체나 노동조합들이 ‘외부 감사제’를 도입한 것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간부들의 잇따른 비리에 시달렸던 한국노총은 2005년 대의원대회 결의를 거쳐 ‘외부 감사제’를 도입했다. 또 대한약사협회도 올 들어 외부감사를 도입하기로 했다. 대외 로비 조직인 ‘약정회’도 폐지했다. 약사회는 로비활동이 임무인 약정회의 씀씀이가 투명하지 않고, 이 때문에 집행부의 횡령 의혹이 고질적으로 되풀이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투명회계포럼의 김갑순 교수(동국대 회계학과)는 “기업의 경우 자산총액이 70억원을 넘으면 외부감사를 받아야 한다”며 “자산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기는 이익단체도 전문성을 갖춘 외부감사인을 두도록 법적 강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지 못할 경우, 소수 집행간부들의 비정상적 의사결정 구조에 의해 예산이 왜곡 집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황보연 정세라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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