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개입 정황 드러나면서 “단순폭행 아닌 죄질 나빠” 견해많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해 구속과 불구속 견해가 맞섰던 법원의 기류에 변화가 일고 있다. 김 회장의 범행에 조직폭력배가 가담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판사들의 견해가 ‘영장 발부’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9일 “검찰이 김 회장의 폭행 사건에 조폭이 동원된 증거를 첨부해 영장을 청구하면, (영장이) 발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조폭까지 개입됐다면, 맞고 들어온 아들을 본 아버지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단순 폭행으로 보기 어렵다”며 “조폭 동원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임을 방증하기 때문에 죄질이 나쁘다고 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실형 선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의 영장이 기각될 것이라는 전망의 주요 근거가 됐던 도주 가능성에 대한 판단에도 변화가 보인다. “재벌 총수이기 때문에 도주 우려가 전혀 없다”는 주장이 더이상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남지역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실형 선고 가능성이 높으면 도주의 우려도 높아진다고 보는 기준은 일반인과 재벌이 같아야 한다”며 “판사들 사이에서도 ‘조폭까지 동원해 사적 보복을 가했을 경우 일반인이라면 당연히 구속될 사안이고, 재벌 회장이라도 예외를 둬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범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불구속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반론이 나오고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법리적으로 다툴 부분이 있는 사안이라면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지만, 범행 정황이 있는데도 사실 관계 자체를 부인한다면 증거인멸 우려가 있어 구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검찰이 조폭이 개입한 물증를 얼마나 찾아내느냐가 김 회장 구속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영장 심사를 담당한 경험이 있는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막상 영장이 청구된 뒤 기록을 검토해보면, 언론에 보도된 수사내용에 상당히 거품이 끼어있는 경우가 많다”며 “증거가 없으면, 당연히 영장 발부도 힘들다”고 말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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