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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총수 주먹질 뒤엔 황제경영 철옹성

등록 2007-05-13 20:47수정 2007-05-14 01:11

1인 지배체제가 법·인권 위에 군림하는 특권 의식 낳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은 결국 그의 구속으로 결말이 났다. 김 회장은 지난 11일 영장 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저 같은 어리석은 애비가 더이상 나오지 않길 바란다”며 후회의 심경을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빗나간 부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재벌 총수의 기업 지배 방식과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 의식이 빚어낸 사건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다. 이번 사건은 1인 지배 체제라는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 아래서 제왕적 권력을 누리는 재벌 총수가 어떠한 사고 방식과 행동 양식을 지니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 발생부터 김 회장이 구속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재벌 총수들이 자신의 사적인 문제와 공식적인 회삿일을 얼마나 혼동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폭력 피의자인 회장을 보위하려고 임직원들이 수시로 동원됐는가 하면, 사건의 와중에서 회장의 인간적 면모를 강조하는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이 모든 일들이 그룹 경영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한화그룹 내부에서도 김 회장이 좀더 빨리 진솔하게 사과해야 했다고 지적하는 직원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총수의 결정에 반대하기 힘든 재벌 체제의 의사결정 구조가 여론에 귀를 막았고 결국 사건을 키운 꼴이 됐다. 한화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판단에 착오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은 ‘의리’와 ‘충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충성 독후감’은 유명한 일화다. 올해 초 김 회장이 1만여명의 직원들에게 김연배 그룹 부회장이 감옥에서 쓴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이란 책과 중국 컨설턴트가 쓴 <충성의 힘>을 나눠주고 독후감을 써내게 했다. 김 부회장은 대한생명 인수 비리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로 구속됐던 인물이다. 당시 그룹 주변에서는 “김부회장이 회장을 대신해 처벌받은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일부에서는 김승연 회장의 ‘화약고’ 같은 성격이 화를 불렀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번 사건을 “지극히 개인 문제일 뿐”이라고 설명하는 전경련의 태도가 대표적이다. 대기업의 입 노릇을 하는 이윤호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김 회장이 구속되기 앞서 “아들이 맞고 와서 아버지가 때린 정도의 사건”으로 해석했다. 돌출적인 일이기 때문에 문제를 확대해서는 안된다는 얘기였다.

물론 이번 사건을 재벌 전체로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재벌 총수들도 은연 중에 충성심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란 시각도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권위는 컨트롤 타워 기능을 하는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에서 나온다. 이 회장은 주로 핵심 측근 인사들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사장단 회의에서는 “회장을 보위하고 …”라는 식의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삼성그룹의 전직 구조조정본부 출신 인사는 “회장은 신비화돼, 회장 주재 회의에서는 물도 안 마시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현대·기아차그룹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은 정몽구 회장의 경우 경영 스타일이 2인자를 절대 용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정 회장의 경영방식을 잦은 인사와 충성 경쟁을 유도하는 데서 찾는 이도 있다.


재벌 총수들이 불법 정치자금 제공이나 비자금 조성, 분식회계 등 범죄를 저지르고도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이들이 상식에 기초한 처신을 하기보다는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야기시키는 폐해는 무시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지표인 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이끌기는커녕 앞장서 법을 우습게 보는 풍토를 만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의 물적·인적 자산을 총수 일가의 개인적인 일에 동원하는 것을 두고서는 배임죄를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 회장들이 도피성 외유에 올랐다가 돌아올 때면 공항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 일쑤다. 실제로 지난해 4월8일 정몽구 회장이 귀국한 인천공항 입국장에는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사 직원 200여명이 동원됐다. 이보다 두달 전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할 때 이 회장을 경호하기 위해 에스원 직원과 전략기획실 임직원 수십명이 배치됐다.

더 심각한 것은 견제받지 않는 경제 권력이 경제 영역을 뛰어넘으려 한다는 점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법학)는 “1인 지배의 재벌 총수들이 법의 지배에서 벗어나 견제와 비판, 통제가 불가능한 경제 권력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재계 인식은 일반 시민의 정서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을 때가 많다. 이런 괴리는 한국 사회에서 재벌 문제를 더 꼬이게 하고, 재계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반기업 정서를 키우는 악순환의 원인이 된다. ‘조폭 재벌’ ‘황제 경영’이라는 말은 그래서 더 상징성을 갖는다.

총수를 위한 충성 경쟁이 벌어지고 옥살이도 마다지 않는 부하 직원들이 나오는 웃지 못할 일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이제라도 재벌 총수 스스로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재벌 총수의 말과 방침이 곧 법이요 명령이 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총수의 잘못을 지적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재벌 총수들은 사회와의 소통이 적고 의사결정 구조도 투명하지 않은 탓에, 한번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기업뿐 아니라, 국민경제를 위기로 내몰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한국 재벌이 밀실에서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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