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낮 불이나 성매매 여성 4명이 숨지는 등 참사가 일어난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속칭 미아리텍사스 집창촌 건물 화재현장. 연합
업주 단속무시 영업강행 ‥ 늦잠자던 여성 5명 사망
주검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불에 검게 타 있었다. 그 참혹한 얼굴에서 숨지기 직전 여성들이 느꼈을 고통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27일 낮 12시36분께 서울 성북구 하월곡1동 성매매 업소 밀집지역인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 4층짜리 건물에서 난 불로 여성 5명이 숨졌다. 4명은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3층 계단과 4층 방에서 숨졌고, 1명은 가까스로 구출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오후 4시10분께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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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의사들은 “여성들이 건물이 탈 때 나온 유독가스를 마시고 질식해 숨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숨진 여성들은 모두 가명을 쓰고 있어 경찰은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은 유족들에게 이들의 죽음을 알리지 못하고 있다. 사고가 터진 지 3시간 만에 현장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경찰은 “술을 많이 마신 여성들이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려 불이 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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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여성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해온 현장 활동가들은 “경찰이 사고의 원인을 피해 여성들에게 돌리고 있다”며 분노했다. 김현선(38) 새움터 대표는 “사고가 터지기 전날 단속에서 경찰이 업주를 구속해 영업을 막았으면,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다”며 “성매매 밀집지역에서 사고가 터질 때마다 경찰은 여성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문제를 덮으려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전날 밤 9시께 이날 불이 난 업소에 대해 단속을 벌여 업주 고아무개(54)씨를 성매매 처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업소 안에는 성매매 여성 9명이 있었지만 손님은 없어 업주를 불구속 입건하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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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주는 경찰의 단속이 끝난 뒤 여성들을 다시 업소로 데려가 새벽 6시까지 영업을 계속하도록 시켰다. 불이 났을 때 여성 4명은 깊은 잠에 빠져 건물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날 화를 면한 정아무개(22)씨는 경찰에서 “새벽 6시께 일을 끝내고 피시방에 갔다가 오전 10시께 돌아와 보니, 5~6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고 한 언니가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던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불이 3층에서 시작해 4층으로 번진 것으로 미뤄, 누군가 떨어뜨린 담배꽁초가 화재의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건물 지하에는 여성들이 손님을 받는 방 7개가 마련돼 있었고, 2~4층은 여성들이 생활하는 방 10개와 창고·화장실 등을 갖추고 있었다. 이 건물에서는 성매매 여성들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한 감금장치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한편 이날 화재 현장을 둘러본 장하진 여성부 장관은 “인권이 가장 처참히 유린된 지대”라며 “성매매 여성 지원 방안을 심층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길윤형 김남일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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