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 삶터 지켜온 물질 끊길판” “해녀는 제주도에만 있지 않아요?” “그런 소리 하면 서운하지, 여기 울릉 해녀가 버젓이 있는데.” 윤춘자(53·사진 왼쪽), 홍복신(49·가운데), 김복선(53·오른쪽)씨가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사래를 친다. 이들은 열여덟, 열아홉에 제주도에서 일감을 찾아 울릉도로 건너왔다. 울릉도 총각을 만나 결혼해서 줄곧 이곳을 터전으로 삼으면서 울릉 해녀가 돼버렸다. “제주에서 물질을 막 배울 때쯤 울릉도에서 작업할 해녀를 모은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따라나섰지. 보리쌀과 좁쌀을 짊어지고, 24시간 넘게 배를 타고 울릉도에 첫발을 디뎠는데 그 길로 여기 눌러앉아버렸어.” 30여년 전 제주 출신 해녀들이 무더기로 울릉도로 옮겨와 해녀 100여명이 울릉도 바다 곳곳에서 물질을 했다. 날이 갈수록 작업할 수 있는 바다가 제한되면서 수가 줄어들었다. 이제는 제주 출신 해녀만 10명이 남았다. 당시에는 ‘해녀배’가 따로 있어서 해녀들을 바다로 실어다 줬지만, 요즘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작은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간다. 세 사람은 10여년 전부터 한 배를 타고 일을 나가고 있다. 해녀를 하겠다는 젊은 여성이 없다보니 올해 쉰을 바라보는 홍씨가 울릉도 해녀 가운데 막내다. 가장 큰 언니는 김화선(84·울릉읍 저동리)씨로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일주일에 하루이틀씩은 꼭 물질을 한다.
겨울에는 문어, 소라, 전복을 따고, 여름에는 홍합을 주로 딴다. 날씨가 좋은 날을 골라 한 달 평균 열흘 정도 작업을 나가서 하루 4시간쯤 물질을 한다. 그렇게 해서 하루에 3만~10만원 정도 번다. “육지처럼 산과 땅, 동굴이 있는 바닷속이 좋아서 며칠 못가보면 궁금해서 들어가보고 싶어.” 윤씨의 얘기다. 삼십년 넘게 물속을 들락거리다 보니 이들은 자주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흔히 말하는 ‘잠수병’이라고 짐작만 할 뿐 따로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아 본 적은 없다. 김씨는 “숨이 차오르는데도 소라 하나 더 따려고 욕심부리다가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여러번 있었다”며 “힘은 들어도 나름대로 쏠쏠한 재미도 있고 벌이도 괜찮은데 아무도 물질을 안하려고 하니 우리가 마지막 해녀인 셈”이라며 씁쓸해했다. 울릉도/글 박주희, 사진 강창광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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