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이름으로 아파트 분양을 신청해 당첨됐다면, 이름을 빌려준 사람이 마음을 바꿔 분양권을 넘겨주지 않더라도 이를 돌려받을 수 없다는 항소심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하아무개(51)씨는 2002년 분당에 새로 짓는 주상복합아파트 분양 신청을 하면서 평소 알고 지내던 박아무개(50)씨의 이름을 빌린 뒤 자신의 돈 1천만원을 청약증거금으로 냈다. 이미 남편 이름으로도 분양 신청을 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뒤 박씨 이름으로 신청했던 아파트가 당첨됐다.
하지만 분양권을 넘겨받고 분양계약을 체결하기 직전에 박씨가 이름을 빌려준 것에 대한 대가를 요구했고, 하씨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박씨는 “분양권을 넘겨주지 않겠다”며 자신의 이름으로 분양계약을 체결한 뒤 소유권 이전 등기까지 마쳐 버렸다. 하씨는 분양권을 돌려받으려 소송을 냈지만, 1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고법 19민사부(재판장 최재형)도 14일 하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명의 대여로 분양계약이 이뤄진다면 ‘부정한 방법으로 주택을 공급받게 하거나 공급받을 수 없다’고 규정한 당시의 주택건설촉진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주택 공급을 신청할 수 있는 지위가 무효화되거나 이미 체결된 계약이 취소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대가에 대한 구체적 약정 없이 명의를 빌려 분양신청을 하고 당첨될 경우 분양권을 넘겨받기로 한 것은 증여에 유사한 계약에 해당한다”며 “민법은 증여 의사가 서면에 표시되지 않을 경우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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