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문 번역가 된 하쓰이케 가오루
‘납북’ 피해자에서 한국 전문 번역가 된 하쓰이케 가오루
지난 5월말 소설가 공지영씨의 베스트셀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일본어로 번역해 출판한 하쓰이케 가오루(49) 인터뷰는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다. 출판사의 담당자에게 인터뷰 주선을 요청했으나 연락이 없어 원작자인 공씨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믿을 만한 신문이라는 공씨의 이메일을 받은 하쓰이케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일주일쯤 뒤였다. 하쓰이케는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여러 단서와 조건을 달았다. 고통스러운 그의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이해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24년 동안의 뜻하지 않은 북한생활 끝에 지난 2002년 일본으로 돌아온 하쓰이케는 이른바 납치피해자다. 1978년 주오대학 법학과 3년 재학중 고향인 니가타현 가시와자키시에서 괴한에게 납치돼 북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지난 10일 가시와자키시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언론에 자신의 견해를 얘기하는 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말을 아꼈다.
하쓰이케는 “내 뜻에 반한 것이지만 현지에서 오랜기간 배운 말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2005년 5월 김훈씨의 〈칼의 노래〉를 〈고독한 장수〉라는 이름으로 번역해 출판한 이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까지 10권의 한국서적을 번역했다. 그는 ‘잃어버린 24년’을 보충이라도 하듯 1인3역으로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낮에는 니가타산업대학에서 비상근 조선어 강사 겸 직원으로 일한다. 밤에는 복학한 주오대학 법학부(통신과정) 학생으로 돌아간다. 번역작업은 새벽 3시부터 아침 7시까지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피랍 24년만에 귀국 “배운 말 헛되지 않게”
‘칼의 노래’ ‘우·행·시’ 등 10권 소개
“재일동포들 대신 사과…미안해하지 마세요” 그는 〈칼의 노래〉를 번역하면서 “문장이 날카롭고 힘이 있어 제대로 번역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초고를 4~5개월만에 번역하고도 퇴고를 거듭해 완성까지 8개월이 걸렸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뛰어나다. 그리고 이 작품은 보통 소설이 아니다. 시각·청각·후각에 호소하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사형수와 부유한 집안 출신 미술강사의 만남을 통해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과정을 그린 공씨의 소설에 대해서는 “개인적 소설이 대부분인 일본 소설과 달리 사회문제를 다루면서도 읽고나면 마음이 밝아지게 하고, 희망을 전해준다”고 평가했다. 북한에서 배운 우리말로 한국작품을 번역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까?
그는 북쪽 사람이나 남쪽 사람이나 정서적인 부분은 비슷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북에서 살면서 서민들하고 사귈 기회가 있었는데 순박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았다. 생활이 어렵다보니 감정이 거칠거칠한 사람도 더러 있긴 했지만….” 그는 공씨의 5월 중순 일본 방문을 안내하기 위해 두 달동안 집중적으로 한국말을 공부했다고 했다. 그의 말에는 북한식 억양과 표현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약간의 서울말투와 일본식 사고방식이 섞여 있다. 그는 자신의 독특한 경험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한국 사람은 참 민족의식이 강하구나’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나한테 편지와 전화를 해 미안하다고 하는 재일동포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번역작업은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2004년 일본에 돌아온 아이들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이 스무살 넘어서 일본에 왔기 때문에 일본말이 서투르다. 그러나 그것을 약점으로 생각하지 않고 한국말 잘하는 것을 강점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북한에서 자란 것을 핸디캡으로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북한과의 교류가 생기면 여러가지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그런 의미에서 번역작업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같다.” 원치 않은 북한생활은 그에게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사람과 차단돼 개인적으로 큰 손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 세월을 한탄하고 사는 모습을 적어도 아이들에게 보여줘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가시와자키/글·사진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칼의 노래’ ‘우·행·시’ 등 10권 소개
“재일동포들 대신 사과…미안해하지 마세요” 그는 〈칼의 노래〉를 번역하면서 “문장이 날카롭고 힘이 있어 제대로 번역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초고를 4~5개월만에 번역하고도 퇴고를 거듭해 완성까지 8개월이 걸렸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뛰어나다. 그리고 이 작품은 보통 소설이 아니다. 시각·청각·후각에 호소하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사형수와 부유한 집안 출신 미술강사의 만남을 통해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과정을 그린 공씨의 소설에 대해서는 “개인적 소설이 대부분인 일본 소설과 달리 사회문제를 다루면서도 읽고나면 마음이 밝아지게 하고, 희망을 전해준다”고 평가했다. 북한에서 배운 우리말로 한국작품을 번역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까?
그는 북쪽 사람이나 남쪽 사람이나 정서적인 부분은 비슷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북에서 살면서 서민들하고 사귈 기회가 있었는데 순박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았다. 생활이 어렵다보니 감정이 거칠거칠한 사람도 더러 있긴 했지만….” 그는 공씨의 5월 중순 일본 방문을 안내하기 위해 두 달동안 집중적으로 한국말을 공부했다고 했다. 그의 말에는 북한식 억양과 표현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약간의 서울말투와 일본식 사고방식이 섞여 있다. 그는 자신의 독특한 경험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한국 사람은 참 민족의식이 강하구나’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나한테 편지와 전화를 해 미안하다고 하는 재일동포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번역작업은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2004년 일본에 돌아온 아이들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이 스무살 넘어서 일본에 왔기 때문에 일본말이 서투르다. 그러나 그것을 약점으로 생각하지 않고 한국말 잘하는 것을 강점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북한에서 자란 것을 핸디캡으로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북한과의 교류가 생기면 여러가지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그런 의미에서 번역작업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같다.” 원치 않은 북한생활은 그에게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사람과 차단돼 개인적으로 큰 손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 세월을 한탄하고 사는 모습을 적어도 아이들에게 보여줘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가시와자키/글·사진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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