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29일 내놓은 요구사항은 그동안 서울지역 주요 사립대 총장들이 산발적으로 주장해온 것들을 하나로 모은 것이다. 하지만 ‘사립대학 발전을 위한 우리의 입장’이란 제목에 걸맞게 진정 대학발전을 위한 순수하고 절실한 요구인지는 의문이다.
대입전형 자율화=사립대학들은 논술 가이드라인 폐지를 주장했다. 획일적인 가이드라인이 각 대학의 인재양성 목표 및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고등교육 활성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이 없어지면 당장 영어 논술, 수리 논술 등 본고사가 부활할 게 뻔하다. 실제로 2005~2006년 주요 대학들은 본고사식 논술문제를 출제했고 이는 사교육을 부추기는 결과로 나타났다.
사립대학들은 등급만으로는 전형자료로 활용하기 미흡하다며 고교별 수능 등급과 대학 진학 현황 등을 공개할 것도 요구했다. 이 역시 무리한 주장이라고 고교 교사들은 말한다. 당장 이달 치러진 수능 모의평가에서 영역별 등급을 조합하면 학생을 변별하는 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듯이 내신도 9등급이면 학생 선발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형빈 서울 이화여고 교사는 “(협의회의 요구는) 고교 등급제와 학생 서열화를 하자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사학법 재개정=한나라당의 주장을 판에 박은 듯하다. 사립대학들은 개방형 이사제, 학교장 임기 제한을 없애고, 임시이사 임기를 2년으로 줄이자고 한다. 또 심의기구로 돼 있는 대학평의원회를 자문기구로 낮추자고 요구했다.
조연희 전교조 사립위원장은 “개방형 이사제 거부는 학내 구성원을 못 믿겠다는 것이고 그동안 지속돼온 불투명한 학교운영을 계속하겠다는 뜻인데 총장들이 이런 요구를 했다는 것은 스스로 재단의 하수인임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도 연임 포함해 8년까지 할 수 있는 학교장 임기를 정관으로 정하자는 것은 종신 교장을 세우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국가 재정지원 확대=사립대학들은 학교 쪽이 50%를 부담하고 있는 국가유공자 자녀 학비 면제를 국가가 100% 책임져줄 것을 요구하고, 가계 곤란 학생 등록금 면제에 대해서도 국고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장애인 직원을 고용하지 못했을 때 납부하는 부담금도 낮춰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수연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외국 대학들의 장학금 지급 비율은 우리보다 훨씬 높다”며 “우리 대학들이 실제로 학생교육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를 반성하는 일이 앞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자립형 사립고를 늘려 남는 돈을 사립대에 지원해 달라고 했는데 사립대 총장들의 교육 마인드가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대학행정 규제 완화=사립대학들은 불필요한 각종 규제를 줄이고, 규제의 존속기간을 미리 정해두는 규제 일몰제를 도입할 것도 요구했다. 하지만 전임교원 확보율을 계산할 때 초빙·겸임교수 포함 비중을 높여 달라는 요구는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박거용 상명대 교수(영어교육과)는 “2001년 이후 전임교원 확보율 기준을 완화해 초빙·겸임교수나 강사들이 일주일에 9시간 이상 강의하면 1명의 전임교원을 확보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사립대학들 요구대로 한다면 대학 교육 여건은 훨씬 더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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