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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강제로 얻고도 떼지 못한 ‘전범 딱지’

등록 2007-07-02 19:05

일제 포로감시원 동원됐던 이학래씨
일제 포로감시원 동원됐던 이학래씨
일제 포로감시원 동원됐던 이학래씨 일본강연
“제 마음의 밑바탕에는 민족적 송구감이 있습니다. 민족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정부에는 특별히 요구할 게 없습니다.”

1일 오후 재일한일역사자료관 주최의 강연회가 열린 일본 도쿄 미나토구 재일 한국문화원 건물 3층 세미나실. ‘친일파’‘대일협력자’라는 한국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며 반세기 이상 싸워온 BC급 전범 출신인 이학래(82·사진)씨는 강연 뒤 한국과 일본 정부에 요구하고 싶은 것을 묻는 질문에 ‘민족에 대한 부채감’이란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이런 마음으로 한국 정부의 처분만 바라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후 연합군의 군사법정에서 포로학대 등의 혐의로 처벌받은 BC급 전범 5700여명 가운데는 조선인 148명이 포함돼 있다. 그들 대부분(129명)이 반강제적으로 동원된 포로감시원들이었다. 이씨는 1942년 타이의 포로수용소에 포로감시원으로 동원됐다가 두번이나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군사법정 사형선고→20년 복역 같은 처지 한국인 9명 생존
“민족에게는 부채의식…일 정부에 명예회복 바랄 뿐”

1946년 오스트레일리아 군사법정에서 “처벌할 가치가 없다”는 판결을 받아 풀려나 귀국하던 도중 다시 붙잡 사형선고를 받았고, 이듬해 극적으로 20년형으로 감형됐다. 포로들의 일방적 증언을 토대로 작성된 재판기록을 보면, 그가 포로수용소 책임자로 둔갑된 게 사형판결까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는 지난해 6월 이씨를 비롯해 BC급 전범들을 식민지 시대의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로 공식 인정했다. 한이 절반쯤은 풀린 셈이다. BC급 전범 출신 한국인 70여명이 일본에서‘한국 출신 전범자 동진회’를 설립해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기 시작한 지 51년만이다. 이씨는 1956년 가석방된 뒤 동진회에 합류했다. 그는 91년 8월 사형언도에 결정적인 증언을 했던 오스트레일리아인들과도 화해했다. “그들로부터 사과하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오스트레일리아로 가서 저도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어쨌든 당시 포로들이 처한 상황은 혹독했거든요.”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아직도 요지부동이다. “일본인으로서 복역했으나 석방될 때는 한국인 신분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상과 원호의 대상에서 우리들을 제외했습니다.”

이씨 등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긴 싸움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나 재일본대한민국민단으로부터 외면당했다. 대신 일본의 양심적 인사들이 물심 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의사인 이마이 도모후미(1996년 사망)는 동진회 회원들이 60년 택시회사를 설립할 때 200만엔을 보태 자립의 기반을 만들어주었다. BC급전범 연구자인 우쓰미 아이코 전 게이센여학원 교수(65)는 30여년전부터 이씨 등의 명예회복 활동을 해오고 있다.

8년에 걸친 법정투쟁 끝에 최고재판소는 1999년 12월 최종판결에서 이씨 등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고재판소는 한국인 전범들이“반강제적으로 포로감시원에 응하게 됐다. 무기 또는 극형을 받음으로써 심각하고 심대한 희생 또는 손해를 입었다”고 인정했다.

이씨는 일본 입법부가 법을 만들어 보상과 명예회복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일본에서 거주하는 한국인 전범 생존자는 9명으로 줄었다. 모두 82~90살의 고령자다.

도쿄/글·사진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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