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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6·25 터지고 사흘만에 보도연맹 100여명 총살”

등록 2007-07-03 18:40

당시 헌병장교 김만식씨
당시 헌병장교 김만식씨
당시 헌병장교 김만식씨 “대통령 명령이라 불가피”
“전쟁 때 명령을 받는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조처였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 간 사람들은 참으로 미안하고 안타깝죠. 이젠 나라가 나서 그 억울함을 풀어줘야죠.”

한국전쟁때 6사단 헌병대 제4과장으로 강원·충북지역 국민보도연맹사건 현장에 있던 김만식(80·사진·충북 청주시 수곡동)씨의 말이다.

김씨는 “전쟁나고 사흘만인 50년 6월28일 강원도 횡성의 한 산모퉁이에서 보도연맹원 100여명, 다음달 원주의 한 비행장에서 70~80명을 숙청했다”며 “경찰에서 대상자를 골랐고, 헌병대 지휘·감독 아래 보병 등을 동원해 보도연맹원들을 총살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의 전화 구두 명령(전언 통신문)에 따라 시커먼 전깃줄에 묶여 아우성치던 이들을 처형했다”며 “아무리 전쟁 때라고 해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증언은 지금까지 보도연맹 최초 학살은 50년 7월1일 경기 이천에서 있었다는 논문·증언 등을 뒤집는 것이다. 또 전쟁 당시 보도연맹 사건을 지휘·감독했던 헌병대 초급간부로는 처음하는 증언이기도 하다.

보도연맹 사건 관련 논문을 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김선호 조사관은 “정확한 증언을 들어봐야 겠지만 지휘계통에 있던 가해자 쪽의 증언이라면 상당한 신빙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만식씨는 전쟁 영웅이라는 점이 증언의 믿음과 가치를 더하고 있다. 그는 한국전쟁 때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였던 다부동 전투 ‘육탄결사대’로 참여했다. 소대원 25명과 전투에 참여했다가 유일하게 살아 남아 금성 을지 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보국훈장 등을 받았다. 왼손·눈·갈비뼈 등을 크게 다친 그는 56년 10월 육군 대위로 예편해 대한무공수훈자회 초대 충북지부장 등을 지냈으며, 지금은 행정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조국을 사랑했기에 몸과 마음을 바쳐 전투에 참여해 전과를 올렸지만 보도연맹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팠다”며 “인권 회복 차원에서라도 무고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 주는 거름이 되는 마음으로 얘기를 꺼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4일 오전 11시 충북도청에서 강원 횡성·원주, 충북 청원 등지에서 있었던 보도연맹 관련 민간인 학살 상황 등을 증언할 계획이다.

청주/글·사진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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