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항소심 사실상 공전…재판부 “9월 공판에도 불출석 땐 사응 조처”
학교 돈 수십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법정구속되지 않은 정태수(84) 전 한보그룹 회장이 항소심 도중 외국으로 나가 버린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정 회장은 이후 사전 양해 없이 두 차례 공판에 나오지 않다.
정 회장의 강릉 영동대 교비 72억여원 횡령 사건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심상철)는 정 회장이 지난 5월31일과 6월28일 공판에 출석하지 않았다고 4일 밝혔다. 정 회장이 병 치료를 이유로 4월 말~5월 초께 일본으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증여세 등 국세 2127억원을 체납해 출국금지됐던 정 회장은 올해 초 법원에 출국금지 해제 소송과 출국금지 집행정지 신청을 냈고,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전성수)는 4월20일 “집행정지로 인해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자료가 없다”며 출국금지 효력을 4월23일~5월22일까지 한달 동안 정지시켰다. 정 회장이 2005년 이후 6개월 단위로 출국금지가 연장될 때마다 출국금지 해제 소송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던 상황에서였다. 이에 대해 행정법원 재판부는 “재산 상황을 봤을 때 납부할 수 있는 세금은 낸 것으로 보이고, 일본에서의 치료는 꽤 오래된 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5월 시작된 항소심 재판은 소송촉진특례법에서 규정한 기한인 4개월을 한참 넘겨 1년여를 끌고 있다. 서울고법은 재판부 변경 등을 이유로 지난해 11월부터 정 회장 재판을 진행하지 않다가 ‘정태수 회장 재판이 5개월째 열리지 않고 있다’는 보도(<한겨레> 3월30일치 10면)가 나온 뒤인 지난 4월 재판을 재개한 바 있다. 정 회장은 지난달 중순에는 서울중앙지법원장에서 퇴임한 지 1년이 채 안 된 이우근 변호사(법무법인 한승) 등을 변호인으로 추가 선임하고, 질병을 이유로 한 불출석 사유서를 서울고법 재판부에 냈다.
이 재판부는 “5월 공판 때 변호인들에게 정 회장 불출석에 대해 엄중히 경고했는데도 6월 공판에도 정 회장이 출석하지 않았다”며 “변호인들에게 정 회장이 다음 기일인 8월23일에도 나오지 않을 경우엔 그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변호인들도 정 회장의 귀국 여부를 확실히 말하지 못했다”며 “재판은 증인 1명 신문만을 남겨 둔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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