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진도군 의신면 면사무소 2층 회의실 무대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옛 초상집 극놀음인 ‘대시래기’ 공연을 하고 있다. 진도/정대하 기자
진도 노인들 ‘대시래기’ 공연 “아짐씨 날 좀 으슥진데다 세워주쇼. 뭔 일 좀 보고 가야겄오.” “아자씨 우리 딸은 다 죽어가는데 먼 일 볼라 그라요?” 29일 오전 10시께 전남 진도군 의신면 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 왁자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다섯 평 남짓한 무대 위에서 의신면 노인들이 장례놀이를 선보이고 있었다. 봉사 점쟁이가 ‘돌깨 엄매’를 따라 나서다가 은근한 성적 농담을 건네는 장면에 노인 100여명이 박수를 쳤다. 이유 없이(?) 애를 밴 사당(여성)과 거사(남성)의 우스꽝스런 몸짓, 사당의 어머니와 봉사 점쟁이가 나누는 익살스런 대화에 상주도 웃음을 참지 못한다. 이날 노인 16명은 노인회 정기총회에 맞춰 ‘대시래기’라는 민속극을 재연했다. 전남 진도·신안 등 서남해안에선 마을에 초상이 나면 밤을 새워가며 우스갯스런 재담과 놀이를 했다. 진도에선 이를 ‘다시래기’(중요무형문화재)나 대시래기 등으로 불렸고, 신안에선 ‘밤달애’라고 했다. 다시래기나 대시래기 모두 초상집 극놀음이라는 점은 같다. 하지만 다시래기는 진도 예능인들이 1970년대 중반 과거의 기억들을 모아 복원하면서, 전문 연희자들의 놀이로 각색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적인 풍습이던 장례놀이는 일제 강점기 이후 점차 사라졌지만, 서남해안에서 지금도 초상집에서 노래방 기기를 틀고 노는 모습으로 남아있다 향토사학자 허옥인(72·의신면)씨는 1984년 고 김양은(1892~1985)씨를 만나 상여놀이를 전해듣고 대본을 기록해 두었다. 김씨는 인근 고군면에 살면서 17살부터 24살까지 실제 초상집에서 대시래기를 놀았던 연희자였다. 허씨는 지난해 12월 마을 노인들에게 “재미난 놀이 한번 해보자”고 제안해 연습을 시작했다.
65살 이상 아마추어 노인 연기자들은 매일 저녁 8시부터 밤 10시까지 마을회관에 모여 대본을 익혔다. 대중가요에 익숙해 민요가락을 타기가 힘들었던 몇몇 어르신들은 중도하차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마을에서 매구(풍물)를 칠 때면 상쇠를 맡기도 했던 박명철(71·돈지리)씨는 “극 중에 애기 낳는 장면을 연습할 때 웃음을 참지 못해 연습이 중단되기도 했다”며 “다 잊어버린 옛날 풍습이라 힘들면서도, 연습하면서 젊어지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대시래기 극놀음은 사당이 아이 낳는 장면을 통해 “망자의 죽음이 단절이 아니다”라는 것을 암시하며 끝났다. 2막 ‘이슬털이’는 망자의 넋을 저승으로 인도하며 슬픔을 함께 나누는 극이었다. 목포대 이경엽(어문학부) 교수는 “이번 대시래기 공연은 실제 연희자의 구술을 바탕으로 원형을 재연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며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민속 뿐 아니라 현장에서 전승되는 문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면사무소 회의실에선 노인회 정기총회와 뒷풀이로 이어졌다. 노인들은 팥죽으로 점심을 들고 술 한 잔씩을 나눈 뒤, 직접 장고채와 북을 들고 남도잡가를 목청 좋게 불렀다. 진도/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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