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원심 깨고 돌려보내
은행이 본인 확인 없이 범인에게 ‘대포 통장’을 개설해 줘 범죄에 이용됐더라도 그 통장이 범죄수익을 단순히 보관하는 데 이용됐다면 은행의 배상 책임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ㅅ운수 사장 김아무개(49)씨는 2001년 10월 말 누군가 휴대전화 ‘텔레뱅킹 서비스’를 이용해 자신의 ㄴ은행 통장에서 2800만원을 ㄱ은행으로 몰래 이체해 2500만원을 빼간 사실을 알게 됐다. 은행에 알아보니, 누군가 같은 달 중순 주운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박아무개’ 명의의 휴대전화와 예금계좌를 개설했다는 것이다. ‘범인’의 얼굴과 주민등록증 사진이 달랐지만 은행 직원은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김씨는 ‘범인’이 같은 달 24일 미리 알고 있던 자신의 통장 계좌·비밀번호 등을 이용해 돈을 이체했음을 알고 놀랐다.
이 회사에서 일하다 같은 해 2월 퇴직한 전 업무과장 김아무개씨가 범인으로 지목돼 사기 혐의 등으로 2002년 6월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전 업무과장 김씨는 은행 폐쇄회로 화면에 찍힌 얼굴과 다르다는 사실 등이 밝혀져 2003년 3월 무죄를 선고받았고 ‘범인’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김씨는 2002년 4월 ㄱ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서울중앙지법은 2005년 3월 “은행이 범행에 도움을 줬다”며 “손해의 70%인 175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 2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범인’이 이미 통장 비밀번호 등 돈을 훔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한 뒤 훔친 돈을 잠시 입금·보관하는 데 ㄱ은행 계좌를 사용한 것에 불과하고, ㄱ은행 계좌를 개설한 탓에 범행이 가능해진 게 아니므로 배상 책임이 없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5일 밝혔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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