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청원군민회관에서 황혼 결혼식을 올린 한성호·김영길, 신두호·이옥자, 김용덕·전영임, 이범우·노복순씨 부부.(왼쪽부터) 청원군노인복지회관 제공
‘정한수 한사발로 백년가약 지킨 참부부들’
19일 오전 10시 충북 청원군민회관에서는 뜻깊은 ‘황혼결혼식’이 열렸다. 이날 결혼식은 전쟁·가난 때문에 식을 올리지 못한채 40~50년을 살아 온 애틋한 네 쌍의 부부를 위해 청원군노인복지회관이 마련했는데, 신랑·신부는 물론 하객 절반 이상이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이었다.
주례를 맡은 이수한(47) 신부는 이들 부부보다 하객들에게 주례사를 했다. 이 신부는 “이들 네 쌍의 부부는 혼인 예식없이도 평생을 상대방을 이해하며 다가가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줬다”며 “젊은 세대들은 부디 이들 부부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네 쌍의 나이든 신랑·신부는 저마다 애틋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김용덕(80)·전영임(76)부부는 전쟁이 결혼식을 막았다. 약혼을 하고 입대했으나 곧바로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결혼을 하지 못했다. 살아 생전 아들의 결혼을 보고 싶다는 어머니 간청 덕에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 휴가를 받아 정한수를 떠 놓고 백년가약을 했다. 그 뒤 56년을 함께 살아왔지만 가난탓에 정식으로 식을 올리지 못했다. 김씨는 “영원히 함께 하자던 약속은 지금까지 지켰지만 식을 올리지 못한게 마음에 늘 걸렸다”며 “뒤늦게 식을 올리게 돼 쑥스럽지만 아내에게 보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범우(76)·노복순(76)씨 부부는 가난이 결혼식을 막았다.
이씨는 “전쟁이 끝난 55년 아내를 만났지만 결혼식보다 목구멍에 풀칠하는 것이 먼저였다”며 “그 뒤에는 7남매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는 2003년 부인 노씨가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를 얻은 뒤 생각이 달라졌다. 이씨는 “언제 어디를 가든 손을 잡아 주면 되지만 식을 올리지 못한채 살아온 짐을 내릴 수없어 쑥스럽지만 용기를 내 늦은 결혼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두호(72)·이옥자(63)부부는 ‘재혼의 부끄러움’ 때문에 식을 올리지 못한 경우다.
6년전 부인과 사별한 신씨와 첫 결혼에 실패한 뒤 36년을 수절한 이씨는 2004년 제2의 배필을 찾았지만 주변의 눈 때문에 식을 올리지 않고 살아 오다 이날 용기를 냈다. 어려운 형편 탓에 45년만에 결혼식을 한 한선호(73)·김영길(68)씨 부부는 막내 아들 운장(40)씨가 읽은 편지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운장씨는 “아버님, 어머님의 사랑은 한 없이 퍼주고 나눠줘도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다”며 “이제는 힘들어 하지 말고 사남매가 하나의 선물이 되겠다”고 울먹였다.
청원/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청원/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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