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뇌물죄 적용’ 원심파기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윤재윤)는 20일 농협중앙회 소유의 서울 양재동 땅 285평을 현대차그룹한테 66억2천만원에 팔고 사례금으로 3억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로 기소된 정대근(63) 농협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5년과 추징금 1300만원을 선고하면서 정 회장을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특가법에서 정부관리기업체 임직원을 준공무원으로 보는 이유는, 정부관리기업체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투명한 경영을 위해 돈에 대해 엄격해야 한다는 취지”라며 “정부가 농협을 실질적으로 지배하지 않더라도 법령에 따라 지도·감독을 한다면 정부관리기업체로 봐야 하므로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거액의 돈을 호텔 밀실에서 받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법정 구속한 이유를 밝혔다.
특가법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업체(정부관리기업체)의 간부 직원은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는 공무원에 해당하며, 이 법 시행령은 ‘정부관리기업체’에 농협을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월 “1999년 제정된 농협법에 따라 정부에 사업계획을 보고하는 제도가 폐지되는 등 농협 임직원은 공무원으로 볼 수 없어 특가법의 뇌물죄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판결은 정 회장에게 돈을 건넨 김동진 현대차그룹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함께 기소된 김 부회장에게 횡령 등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면서도, 정대근 회장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서는 “정 회장을 공무원으로 볼 수 없으므로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날 판결로 김 부회장의 항소심에서 뇌물공여 혐의도 유죄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편, 농협은 이날 이사회를 열어 박석휘 전무를 회장 직무대행으로 선임했다. 농협은 “정관에 따라 회장이 구금 등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전무이사가 직무를 대행한다”고 밝혔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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