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철 중위(27·대위 추서·왼쪽) / 고 박명렬 소령(오른쪽)
KF-16기 추락 사망 박인철 중위, 안타까운 대 이은 순직
23년 전 전투기 추락사고로 숨진 아버지에 이어 아들마저 전투기를 조종하다 순직했다.
공군은 “20일 서해 상공에서 야간비행 임무를 수행하다 실종된 KF-16D 전투기가 바다에 추락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21일 밝혔다. 공군은 사고기에 타고 있던 이규진(38·중령 추서) 소령과 박인철(27·대위 추서) 중위 모두 순직한 것으로 추정했다.
박 중위는 1984년 3월 전투기 조종 도중 추락사고로 숨진 아버지 고 박명렬 소령의 뒤를 이어 지난 2월 정식 전투기 조종사가 된 지 5개월여 만에 사고를 당했다. 고 박 소령은 당시 공군 주력기인 F-4E를 몰고 한-미 합동 팀스피릿 훈련에 참가했다가 불의의 사고로 순직했다. 저고도 사격훈련 뒤 기체의 고도 회복이 이뤄지지 않아서였다고 공군 관계자는 전했다. 박 중위가 4살 때였다.
박 중위는 ‘너만은 절대 군인이 되지 마라’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당부를 들으며 자랐다. 그 뜻을 따라 고교를 마치며 처음엔 일반 대학을 지원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가슴 한편에 품어온 조종사의 꿈을 놓지 못했다. 그는 가족을 설득해 재수 끝에 2000년 공군사관학교에 입교했다. 7년여의 고된 훈련을 거쳐, 올 2월2일 고등비행 수료식에서 마침내 ‘빨간 마후라’를 맸다. 그는 이때 “아버님이 못다 지킨 하늘, 이제부터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며 ‘보라매’의 각오를 다졌다.
지난달 6일 현충일엔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국립현충원의 아버지 묘소를 찾았다.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훌륭한 조종사가 되겠다”고 아버지 영전에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대를 이은 ‘창공의 꿈’을 다 피우지 못한 채 산화했다.
공군 당국자는 “실종 해역을 집중 탐색해, 기체 및 조종사 사출좌석의 일부 잔해를 발견했다”며 “조종석 탈출 때 자동으로 펴지게 돼 있는 고무보트가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봐 조종사는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군은 황원동 참모차장(중장)을 위원장으로 한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함정 14척과 헬기, 대잠초계기 등을 동원해 기체 잔해와 조종사 시신을 인양하기 위한 탐색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두 조종사의 영결식은 23일 오전 10시 고인들이 근무했던 충남 서산 제20전투비행단에서 열린다.
현재 공군 주력기로 모두 130여대가 도입·운용되고 있는 KF-16이 추락한 것은 이번이 벌써 다섯번째다. 특히 지난 2월 추락사고를 계기로 공군의 광범한 정비부실 실태가 드러나 공군 참모총장이 물러나는 등 충격을 준 바 있다. 공군은 “블랙박스나 엔진 잔해 등이 수거돼야 정확한 사고 원인을 알 수 있다”며 “사고 경위를 철저히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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