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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촌과 결혼 관습인데…” 귀화 한국인 혼인무효 위기

등록 2007-07-30 09:36수정 2007-07-30 09:52

현지 관습에 따라 사촌 여동생과 결혼했으나 국내법에 따라 혼인무효 상황에 놓인 파키스탄 출신 귀화 한국인 임란알리씨가 28일 경기 김포이주민센터에서 부인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신소영 기자 <A href="mailto:viator@hani.co.kr">viator@hani.co.kr</A>
현지 관습에 따라 사촌 여동생과 결혼했으나 국내법에 따라 혼인무효 상황에 놓인 파키스탄 출신 귀화 한국인 임란알리씨가 28일 경기 김포이주민센터에서 부인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귀화 임란알리씨, 파키스탄 관습따라 결혼
한국 대사관, ‘사촌 부부’ 비자발급 거부

그는 얼마 전 사촌 여동생과 결혼했다. 그가 나고 자란 파키스탄에서 사촌과 결혼하는 건 ‘평범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이다. 2005년 4월 귀화했다. 한국인 임란알리(37)씨의 혼인은 8촌 이내 혈족의 결혼을 금지하는 대한민국 민법에 따라 무효가 되고, 부부는 생이별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사촌과 결혼=2003년 1월 파키스탄 카라치에 사는 임란씨의 작은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늙은 아내와 27살된 딸 시디크, 어린 두 아들을 남겼다. 임란씨의 아버지 버쉬르 아하마드(66)는 집안의 큰아들이 가족 전체를 돌보는 파키스탄 관습에 따라, 어른이라고는 여자밖에 없는 동생 가족을 건사해야 했다. 한국에 돈 벌러 간 아들이 동생 딸과 결혼하면 좋겠지만, 아들은 이미 한국 여성과 결혼해 잘 살고 있었다.

2000년 한국에 온 임란씨는 두 아이를 둔 ㅇ씨(50)를 만나 2001년 결혼했다. ㅇ씨 가족의 반대에도 부부는 “재밌게 살았”고 임란씨는 2005년 한국으로 귀화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들의 학교 생활이었다. 성이 다른 외국인 아버지를 둔 아이들이 놀림감이 됐다. 지난해 11월 임란씨는 5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접고 아내와 협의이혼을 했다.

한달 뒤 임란씨는 몸이 아픈 어머니를 보러 파키스탄으로 돌아갔다. 그곳에 머문 두달 반 동안 아버지는 임란씨에게 사촌 여동생과 결혼하라고 계속 권했다. 지난 3월16일 그는 결국 사촌 여동생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세상 뜬 숙부 딸과 결혼 ‘8촌이내 금지’한국법 몰라”
다문화사회 ‘문화충돌’ 법과 관습 조율 고민할 때


비자발급 거절=혼자 한국으로 돌아온 임란씨는 혼인신고를 하고 호적등본 등을 발급받아 4월 말 파키스탄 주재 한국대사관으로 보냈다. 탈이 난 것은 부인의 비자발급 마지막 단계인 인터뷰에서였다. “결혼은 어떻게 하게 됐습니까?” 한국인 대사관 직원의 질문에 부인은 ‘자연스럽게’ 전말을 설명했다. 한국대사관은 부부가 사촌 사이라는 말에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파키스탄과는 달리 한국에서 8촌 이내 혈족의 결혼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는 사실을 시디크는 물론, 임란씨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지난 27일 경기 김포이주민센터에서 만난 그는 “한국에선 커즌(사촌)하고 결혼 못 하는 거 정말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부인은 지금 임신 4개월째다. 인천에서 중고자동차 매매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파키스탄에 가면 3개월밖에 못 있는다. 그곳에선 외국인인 탓이다.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도 없다. 벌여 놓은 사업이 있고, 파키스탄의 가족도 여기에 생계를 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충돌 어떻게?=임란씨는 지난 2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그는 진정서에서 “파키스탄의 근친 결혼이 우리 관습과 다르지만, 그들이 오래전부터 살아온 방식”이라며 “파키스탄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진 혼인을 인정해 한국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출입국기획과 김재남 계장은 “임란씨가 외국인이라면 인권 문제를 따질 수 있겠지만, 이미 귀화했으니 우리 민법과 미풍양속, 사회적 통념 등에 따라야 한다”며 “호적등본에 혼인 사실이 올랐어도 민법상 무효가 된다. 비자발급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귀화 외국인은 2000년 297명에서 2005년 1만1792명으로 급증했다. 임란씨 경우처럼 ‘문화충돌’이 빚어지는 상황도 훨씬 다양하고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는 “이제까지 우리는 다문화라고 하면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떠올리는 수준에 머물렀지, 법과 제도가 직접 충돌하는 상황을 경험하지 못했다”며 “이제 서로의 법과 제도, 관습을 조율하는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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