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판 출신 변호사들이 수임한 형사항소심 판결문을 분석해보니, 집행유예 기간 중에 범죄를 저질러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벌금형으로 감형된 피고인이 17명이나 됐다.
형법(62조)은 금고 이상의 형(집행유예 포함)을 선고받은 뒤 집행이 끝나거나 면제된 후 3년이 지나기 전에 다시 죄를 저지르면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판사들은 이 조항을 근거로 집행유예 기간에 또다시 죄를 저지르면 실형을 선고한다. 또 그 전에 선고된 집행유예가 취소되므로 피고인은 집행이 유예됐던 형기를 더해 수감생활을 해야한다.
그러나 대전지법 출신 ㅎ 변호사는 음주운전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기간 중에 다시 음주·무면허 운전을 저질러 징역 6월을 선고받은 고아무개씨 사건을 맡아 항소심에서 벌금 500만원의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구금생활을 통해 반성하고 차를 처분했다”고 감형 사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는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다’는 형법을 ‘실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해석하는 대신, ‘벌금형을 선고할 수 있다’고 왜곡해 감형한 것이다.
특히 벌금형으로 감형된 이들 피고인 17명 가운데서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앞선 범죄와 똑같은 범죄를 다시 저지른 경우가 15명이나 됐다. ㅎ 변호사는 음주 운전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피고인 5명을 변론해 항소심에서 모두 벌금형을 받아내는 ‘놀라운’ 성과를 내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집행유예 기간에 범죄를 저지르면 법적으로 다시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벌금형으로 깎아준 것 같다”며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판결”이라고 말했다. 서울변호사협회 소속의 한 초임 변호사는 “전관 출신 향판이 아니라면 결코 그런 판결을 받아낼 수 없다. 일반 변호사는 전혀 불가능한 노골적인 봐주기 판결이다”고 말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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