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 “사인은 심근경색 추정” 주장
외교부 “고인 평소 건강” 공정조사 촉구
외교부 “고인 평소 건강” 공정조사 촉구
중국 병원에서 치료 중 숨진 황정일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정무공사의 사인 규명이 한-중 외교문제로 비화했다. 중국 당국이 약품의 진위나 오남용 여부보다는 지병으로 인한 사망 쪽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 외교통상부가 공개적으로 납득할 만한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김재신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국장은 8일 류샤오빈 주한 중국대사관 대사대리를 외교부로 불러 “한국 정부가 이 사건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며 중국 당국의 신속하고 공정한 조사를 촉구했다.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10일 “국민 보호 차원에서도 이 문제를 가볍게 넘길 수 없다”며 “앞으로 중국과 외교접촉이 있을 때마다 문제를 제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황 공사의 사인을 지병에 따른 심근경색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중국 당국이 최근 비공식적으로 부검 결과를 설명하면서 황 공사의 피에서 혈전이 70% 발견된 점을 들어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던 게 아니냐고 물어왔다”고 말했다. 병원의 과실보다는 황 공사의 평소 건강상태에 혐의를 두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한국대사관 직원들은 이런 설명에 수긍하지 않는 분위기다. 심근경색을 일으킨 원인이 무엇이냐가 중요한데 그에 대한 합당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고인은 숨지기 얼마 전까지도 5㎞를 거뜬히 달렸을 만큼 건강했다고 반박한다. 황 공사가 숨진 문제의 병원에서도 황 공사의 심전도나 혈액에서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항생제인 로세핀과 칼슘이 든 용액을 함께 주사해 쇼크를 일으킨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중국 당국은 투약이 이뤄진 사실만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소식통은 “로세핀이 칼슘과 섞였을 때의 부작용은 중국 당국도 경고한 바 있다”며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국가식품약품감독관리국은 지난 2월 긴급통지문을 통해 “로세핀과 칼슘을 동시에 투약할 경우 환자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와중에 중국 당국이 한국 에스케이(SK)가 베이징에 세운 아이캉 병원의 약품 조달 문제를 조사하고 나서 ‘보복성’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베이징시 위생국과 약품관리국은 8일 아이캉 병원에 들이닥쳐 무허가 약품을 수입했는지 여부를 캐묻고 관련 약품을 수거해 갔다. 중국 당국은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펼쳐지는 식약품 관리 실태 조사의 하나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쪽은 일단 문제의 병원에서 차트 등 황 공사 사인 관련 자료를 모두 수거해, 부검 결과까지 종합해 이르면 다음주 안에 사인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베이징의 한 소식통이 말했다. 이 소식통은 황 공사 사건이 양국 사이의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사인 규명을 엄정하고 과학적으로 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일단 한국 쪽도 중국의 발표를 지켜본 뒤 대응 수위를 정할 방침이다. 유족들은 영결식도 치르지 못한 채 중국 당국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중국 당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한-중 우호관계의 밀도를 재는 잣대가 될 것이라는 소리도 나온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