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 화장품용기 제조업체 화재
의왕 화재로 ‘할머니 노동자’ 8명 사상
회갑 앞두고 날벼락…유족들 “불부터 끄려다 사고 키워” 분통
회갑 앞두고 날벼락…유족들 “불부터 끄려다 사고 키워” 분통
“잔업과 야근을 밥 먹듯이 했는데, 회갑을 앞두고 이렇게 떠나실 줄 몰랐습니다.”
자식들에게 손 벌리는 게 미안해 지독한 시너 냄새를 하루 10시간 넘게 맡아야 했고, 귀여운 손주에게 용돈을 쥐여주기 위해 공장에서 날품을 팔아야 했던 ‘할머니 노동자들’의 고된 삶은 불길 속에서 참혹하게 마감됐다. 지난 9일 경기 의왕시 화장품 용기 제조업체 화재참사로 숨진 이들은 80만~9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잦은 야근으로 하루 12시간 넘게 일해온 60대 여성들이었다.
할머니 노동자들=숨진 김아무개(64)씨는 가출한 며느리 대신 남편과 함께 9살 손자를 키우기 위해 월 75만원을 받고 일하다 변을 당했다. 또 남편을 잃고 20년 넘게 영세공장을 전전하며 자식들을 키운 윤아무개(60)씨는 회갑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세상을 떠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윤씨 아들 이아무개(32)씨는 “어머니가 일하던 공장에선 노인들이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며 “신경통과 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도 진통제를 맞아가며 일을 계속했다”고 흐느꼈다.
숨진 변아무개(60)씨의 주검은 심하게 훼손돼 가족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변씨의 아들 강아무개(31)씨는 “주검을 확인하지 못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가족들은 나이 많은 여성 노동자들을 제대로 대피시키지 않은 회사에 분통을 터뜨렸다. 변씨의 남편(61)은 “10시간 넘게 일 시키고 일당 1만2천원을 주다 최근에 와서야 월급 몇푼 쥐여준 회사”라며 “사람 목숨을 뒤로한 채 불부터 끄려다 이런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현장과 수사=이번 화재는 대형 참사의 ‘악조건’을 모두 갖춘 인재라는 지적이다. 불은 3층짜리 건물 3층 245㎡에 입주한 ㅇ산업 작업장 중간 지점에서 코팅가열기가 폭발하면서 일어났다. 시너와 플라스틱 재료가 대부분인 작업장은 곧바로 불길과 유독가스로 뒤덮였다. 작업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 8명은 순식간에 고립됐다. 하지만 비상구는 없었다. 결국 4명은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졌고 불길을 피해 창문에서 뛰어내린 2명도 역시 숨졌다.
작업장에는 자동 화재탐지 설비 15대와 소화기 2대가 있었지만, 폭발사고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폭 1. 가량의 작업장 복도에는 각종 화공약품이 즐비하게 쌓여 있어 신속한 화재 진압과 노동자들의 대피를 막았다. 의왕소방서는 “영세업체가 밀집한 지역이어서 소방차 진입도 여의치 않았다”고 밝혔다.
2002년부터 10여명이 일해온 이 회사는 한 해 매출 8억원대의 영세기업인데다 인화물질을 많이 취급해 보험회사의 기피로 화재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번 불이 작업장에서 시너를 많이 사용했고 습한 날씨에 유증기가 작업장에 가득 차 작은 불티에도 쉽게 불이 났을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경찰은 또 작업장에서 1천ℓ 이상의 시너통들이 발견됨에 따라 당국에 신고했는지 여부 등도 수사하고 있다. 의왕/김기성 최원형 기자, 유희곤 인턴기자(연세대 사학4)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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