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한 농협 지점에 ‘공과금은 자동수납기를 이용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자동기기 이용해라” 돈 안되는 공과금 납부 안받으려해
타은행 카드로 결제 안되는 곳 많아 불편…금감원 “신고땐 시정”
타은행 카드로 결제 안되는 곳 많아 불편…금감원 “신고땐 시정”
재산세를 내려고 지난달 31일 수원의 한 농협 지점을 찾았던 최아무개(40·수원시 권선구)씨는 “창구에서 현금 납부가 안 되니 공과금 자동수납기를 이용하라”는 말을 들었다. 자동수납은 농협 통장이나 농협 카드가 있어야 결제가 된다.
농협 계좌가 없는 최씨는 “자치단체가 정한 곳에 세금을 내려는데 현금을 안 받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현금 납부를 요구했으나 되레 “통장이나 카드를 만드는 게 뭐가 어려우냐”는 핀잔을 들었다. 1시간여 실랑이 끝에 간신히 창구에 세금을 낸 최씨는 “농협 계좌를 개설한 사람한테만 세금을 자동으로 받겠다는 것은 농협의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해당 지점 쪽은 “창구에서 현금 납부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지점에는 ‘창구에서 공과금 납부 불가’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농협은 종전에 세금 등을 받아온 공과금계를 없애는 대신 지난달 말 전국의 1024개 농협 금융 점포 가운데 80%인 812곳에 939대의 자동수납기를 설치하는 등 자동수납을 확대 중이다.
농협 쪽은 “시중은행들이 공과금을 내러온 사람들을 근처 농협 지점으로 보내고 있어 농협 지점마다 공과금 때문에 다른 일을 못할 정도로 업무 부하가 걸려 그랬던 것 같다”며 화살을 시중 은행 쪽으로 돌렸다.
농협 뿐만 아니라 시중 은행들도 세금이나 공과금을 내려고 온 고객들에게 자동수납기 사용을 요구한다. 청원경찰이 공과금을 내러온 고객을 자동수납기로 이끌거나 창구 직원이 직접 자동수납기를 이용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때문에 특히 자동수납기 사용이 서투른 노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은행 직원과 고객이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다.
한 시중은행 지점에서 일하는 김아무개 차장은 “요즘 은행들끼리 경쟁이 치열해져 지점 창구에서 펀드, 카드, 방카쉬랑스 등의 상품을 경쟁적으로 팔아야 하기 때문에 세금이나 공과금을 내기 위해 오는 고객에게 친절하게 대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세금·공과금 수납이 은행에는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금융결제원이 만든 원가분석 자료를 보면, 인건비 등을 포함해 공과금 수납 건당 원가는 433원으로 분석돼 있다. 하지만 은행이 지로 수납을 해주고 실제로 지로 발행업체로부터 받는 수수료는 건당 100~400원에 그친다. 국세와 지방세는 수수료를 거의 받지 못한다.
김종민 금융감독원 금융지도팀장은 “세금이나 공과금을 창구에서 받지 않는 금융기관은 금감원에 신고하면 시정 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수원/글·사진 홍용덕, 정혁준 기자 ydhong@hani.co.kr
수원/글·사진 홍용덕, 정혁준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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