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희생자 8명과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여정남씨의 조카 여상화씨(왼쪽부터)와 하재완씨 부인 이영교씨 등 유족들이 기자회견 도중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판결 통해 과거사 반성
법원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 1975년 대법원 판결의 불법성까지 인정한 것은, 부끄러운 사법부 과거사에 대한 법원의 반성을 처음으로 말이 아닌 ‘판결’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8부(재판장 권택수)는 21일 “우홍선 등 8명에 대한 공소사실은 대부분 임의성(강압이나 회유 등이 없는 자발성) 없는 증거들이거나 증명력 등이 부족해 유죄로 단정할 수 없는데도, 이를 간과한 비상보통군법회의, 비상고등군법회의 및 대법원은 우씨 등 8명에게 모두 유죄를 인정하고 사형을 선고, 확정시켰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대한민국은 (중앙정보부, 대법원, 비상고등군법회의 검찰부 등의) 불법행위로 인해 우씨 등 8명 및 유족들이 입은 모든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당시 대법원 판결도 ‘불법행위’였음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또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고 믿었던 대법원마저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당해 허위자백을 했고 증거가 조작됐다’는 우씨 등의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적화통일과 국가변란을 바라는 사회 불순세력으로 인정하고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시켰다”며 당시 대법원이 ‘인권의 보루’ 역할에 철저하게 눈감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판례에서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했거나 법이 법관의 직무수행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법관이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했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만 법관의 판결을 위법한 행위로 판단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법원 판결의 위법성이 인정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월 재심 사건 재판부가 당시 대법원의 유죄 판결을 뒤집고 무죄 판결을 내린 바 있지만, 이 또한 당시 대법원에서 채택했던 증거를 인정하지 않은 것일 뿐 판결 자체의 불법성을 지적한 이번 판결과는 다르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법원 고위 관계자는 “비록 하급심 판결이기는 하지만,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용훈 대법원장이 말했던 ‘사법부의 과거사 반성’이 실질적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며 “만일 이 사건이 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간다면 대법원이 판결을 통해 과거사 반성의 뜻을 표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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